
학교 교육현장이 교육적 가치보다 갈등 관리와 법적 리스크 최소화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교육의 기회와 외연을 줄이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현장체험학습 등 교내외 활동 축소가 학교의 단순 방침이 아닌 사고 발생 시 교사가 과도한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에서 비롯된 만큼 정부 차원의 제도 보완과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의 한 유치원 운동회에서 줄을 점프해 넘어가는 활동 중 한 아이가 넘어진 일을 두고 해당 학부모가 줄을 잡고 있던 다른 학부모와 원장, 체육센터 대표를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형사 고소했다. 유치원 내 놀이터 사고로 인한 교사에 대한 형사 고소, 현장체험 중 휴대폰 분실 비용을 교사에게 청구하는 일 등 교실 밖 교육현장엔 예상하기 어려운 민원과 신고가 쇄도한다. 한 초등학교에서는 뮤지컬 관람 중 방해되는 행동을 하는 학생을 지도한 교사에 대해 학부모가 ‘담임이 아닌데 왜 학생을 지도하냐’며 민원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측은 “학부모에 의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등이 늘어 현장 교사들은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며 자괴감으로 교단을 떠나기도 한다”고 밝혔다.
강원 속초 초등학생 현장체험학습 사망 사고 이후 교사들 사이에선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해도 결국 책임은 교사 개인에게 돌아온다’는 불안감이 강해졌다. 학교 현장학습이 축소되는 것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구더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장독을 없애면 안 된다”고 발언한 데 대해 교육계가 크게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체험학습은 이미 크게 줄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서울 초·중·고교 중 비숙박형 현장체험학습, 이른바 소풍을 가거나 계획 중인 학교는 10곳 중 3곳(31%, 407개교)에 그친다. 2024년 74%(984곳), 2025년 58%(773곳)를 거쳐 매년 감소세다. 코로나19 이후인 2023년 10곳 중 8곳(86%, 1150곳)이 갔던 것과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숙박형 체험학습의 감소폭은 더 크다. 올해 숙박형 체험학습(수련활동 포함)을 계획한 학교는 242곳으로 18% 수준이다. 그나마 중학교(33%)는 30%대지만 초등학교는 3%에 불과하다. 교원단체 조사에서도 초등학교 교사 10명 중 9명은 현장체험학습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

과거보다 교사들이 감당해야 하는 책임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교육현장에 대한 민원과 소송이 잇따르면서 우리나라 교사들의 업무 스트레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보다도 높다. OECD가 주관한 ‘교원 및 교직 환경 국제 비교 조사 2024’ 결과에선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는 응답이 11.9%로 OECD 평균(10.0%)을 1.9%p(포인트) 웃돌았다. 또 신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경험한 교사 비율은 10.5%로 OECD 평균(7.9%)보다 2.6%p 상회했다.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에선 학부모 민원 대응 비중이 56.9%로 가장 컸다. 학부모 민원을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 응답한 비율은 조사 대상국 중 한국이 포르투갈(60.6%) 다음으로 높다.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는 교사 비율은 21%로 조사국 중 가장 높았다.
다만 학교가 현장체험학습 등 교실 밖 활동을 줄이면 다양한 경험의 축소는 물론 나아가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기회의 격차가 불가피해질 것이란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그 피해는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박민희 법무법인 로엘 변호사는 “교사들이 다수의 미성년자를 상대로 생활지도, 안전관리, 정서적 돌봄까지 동시에 요구받는 상황”이라며 “외부에서 사고 발생 시 교사가 어떤 조치를 했을 때 법적으로 책임을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세부적인 기준이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