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교수 "집단 변인은 줄고, 개인 변인 커지는 소비 형태 늘어나"
사회적 갈등 심화하면서 귀엽고 무해한 상품들에 매료
남들 하는 것 따라 하면서 차별화하는 '토핑 경제' 주목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책 '트렌드 코리아 2025'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소비 트렌드 키워드를 설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김 교수가 첫 번째로 꼽은 키워드는 '옴니보어'(omnivores)다. 잡식성이라는 뜻인데, 소비의 전형성이 무너지고, 점점 더 개별화·다양화·파편화되어 간다는 말이다. 그는 "클래식을 좋아하면서 임영웅 콘서트에 가고, 라디오에서 아이돌 노래가 나오면 흥얼거리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문화적 취향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뜻한다"라고 설명했다.
소비에 있어서 집단적 변수는 줄고, 개인적 변수가 갈수록 커진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과거에는 자기가 속한 집단, 인종, 연령, 소득 등에 맞춰서 소비했다면, 이 같은 패턴이 무너지고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증명하는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키워드는 '아보하'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뜻하는데, 과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는 결이 다르다. 김 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행복피로증에 걸렸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라며 "불행한 것은 싫지만, 너무 행복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작은 일상에서 느낀 행복을 타인에게 굳이 과시하지 않는 가운데,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 태도가 바로 아보하라는 것이다. 그는 "소확행의 대표 아이템이 명품 립스틱이라면, 아보하의 대표 아이템은 좋은 치약"이라며 "내가 무슨 치약을 쓰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그걸 쓰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세 번째 키워드는 '토핑경제'다. 토핑경제는 '동조'와 '차별화'의 역학 관계 속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남들이 사는 것을 나도 사고 싶지만, 동시에 차별화를 하고 싶은 욕망이 토핑경제에 담겼다. 김 교수는 "크록스가 대단히 품질이 좋아서 싣는 게 아니라 뚫린 구멍에 자기만의 장식품을 달 수 있기 때문에 구매하는 것"이라며 "피자로 비유하면, 기본 도우는 가져오면서 토핑은 내 취향으로 얹는 게 바로 동조와 차별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인간에게 친화적인 상품의 중요성을 강조한 '페이스 테크',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을 소비하는 '무해력', 단일문화의 개념이 옅어지는 '그라데이션K', 직접 보고 만지고 싶어하는 '물성매력', 미래 사회 필수 덕목인 '기후감수성', 상생을 도모하는 '공진화 전략', 조금씩 성취감을 쌓아 자신을 성장시키는 '원포인트업' 등을 내년 소비 트렌드 키워드로 꼽았다.
특히 김 교수는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지금, 한국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를 그라데이션(gradation) 개념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을의 색감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듯이 문화콘텐츠를 단일하고 정지된 개념이 아닌 변화, 연속, 흐름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에는 전부 한국 배우들이 나온다. 그럼 이 영화는 어느 나라의 영화일까?"라고 질문하며 "홍대나 명동은 거의 외국이다. 또 한국 기업이 개발한 흑인 전용 파운데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결국 한국으로 오는 외국의 우수한 인력들을 잘 육성하고,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현지 상품들을 잘 개발하는 등의 개방적 태도가 그라데이션K 개념에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