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빙과업계 ‘빅4’ 제조사들의 담합 사건에 ‘죄질이 나쁘다’며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이슈에 대해서는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담합을 저지른 기업들의 자진 신고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존의 대검찰청 리니언시 규정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이준구 판사)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28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는 빙그레 법인과 빙그레‧롯데푸드 관계자, 그리고 입찰방해 혐의를 받는 롯데제과‧해태제과 관계자에 유죄를 선고했다.
‘아이스크림 담합’ 사건은 리니언시 제도와 특혜에 대한 논란을 남겼다. 법과 예규에 따라 리니언시를 공정거래위원회 또는 검찰에 접수한 기업은 각각 고발, 기소면제 특혜를 부여받는데, 이 사건에서 검찰은 상황과 내용에 따라 리니언시 지위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사건 판결문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롯데제과와 해태제과는 공정위에 리니언시를 각각 1, 2순위로 접수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두 회사는 형사 고발 면제 대상이다. 그러자 검찰은 이들을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닌 형법상 입찰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형사 리니언시 접수도 마찬가지다. 대검찰청 예규인 ‘카르텔 사건 형벌감면 및 수사절차에 관한 지침’에 따라 리니언시를 1순위로 접수한 기업은 기소 면제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형사 리니언시를 1순위로 접수한 것으로 알려진 빙그레는 재판에 넘겨졌다.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리니언시 제도를 무시하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기소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결심공판에서 빙그레 관계자는 검찰 조사 때와 법정에서 진술 내용이 다른 이유에 대해 “저희가 형사처벌 감면(리니언시) 신청을 했고 1순위를 부여받았는데 그 조건이 조사협조였다”며 “당시 검찰 수사관이 앞선 타사의 조사 자료를 보여주시고 ‘수사에 협조하라’고 말해서 제가 참 어리석게도 그대로 했다”고 밝혔다.
검사가 “리니언시를 받을 줄 알고 협조했는데 리니언시 지위를 인정해주지 않으니 협조하지 않겠다는 건가”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협조는 아니고, 당시에 그렇게 했다는 것을 후회한다. 반성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빙그레 측은 최종 변론을 통해 “공정위가 현장조사를 먼저 간 업체가 사실을 파악하고 리니언시를 1순위로 접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빙그레는) 리니언시 순위를 인정받지 못했다”며 “검찰에 리니언시를 신청해 1순위를 인정받았고 원칙적으로 기소가 면제되는 것이 원칙인데 검찰은 수사 협조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보고 기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형사 리니언시를 1순위로 접수했음에도 기소된 것이 억울하다는 취지다.
검찰 측은 아무리 형사 리니언시 접수가 빨랐어도 내용에 따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고 형사면책도 의무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정위에서 신고를 받고 1년 넘게 조사할 만큼 다 한 뒤 검찰에 뒤늦게 리니언시를 접수한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고,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하지도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 로펌의 변호사는 “기업이 자진신고를 했을 때 특혜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분명해야 담합을 적발할 수 있는 자진신고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라며 “그게 검사의 수사 재량으로 오락가락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제도의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리니언시 특혜에 대한 논란이 많았던 사건인 만큼 재판부가 1심 선고에서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으나, 재판부는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공정위 리니언시 접수는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검 리니언시는 법이 아니라 예규이기 때문에 형사 사건을 다루는 재판부가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형사 사건과 달리 행정 사건을 다루는 서울고법 재판부는 지난달 15일 롯데푸드와 롯데제과의 공정위 리니언시 지위에 대한 판단을 명확하게 내린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대검 리니언시 지침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번 사건 재판처럼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보기 어렵고 예규로 정해진 탓에 법적으로 다퉈볼 수도 없다는 한계 때문이다.
앞서의 변호사는 “형사 리니언시는 법이 아닌 대검 예규로 정해져 있어 다소 불완전한 제도로 보일 수도 있다”며 “논란이 끊이질 않는 만큼 지침을 다시 개정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