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실리 중심 협력 불가피...광물 공급원 확보·첨단산업 손 잡아야 [리셋 차이나]

한중 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해제 물꼬 등 정치·외교 관계 복원을 공고히했지만 경제적 측면의 수확을 기대하긴 여전히 쉽지 않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기술 자립과 산업 내재화를 가속하며 대외 의존도를 빠르게 낮추고 있고, 중국인들의 소비 방식 역시 변화하고 있어서다. 과거 제조업 중심 협력이 아닌 경제적 실용과 실리를 기반으로 콘텐츠와 서비스·금융을 모두 아우르는 수평적인 협력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전문가들은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중국 시장과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콘텐츠의 단순 유통이 아닌 합작과 공통투자가 방법 중 하나로 거론된다. 산업계에선 광물 공급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의 중국 협력 모델 수립, 자율주행 등 벤처 업계의 기술 협업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과정에서 우리 산업·금융계의 한계점과 앞으로 나아갈 '리셋 차이나'의 방향을 전문가를 통해 짚어본다.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관광객의 귀환⋯‘소비 회복’ 넘어 산업 구조 재편으로 가야

이번 한중 정상회담으로 한한령 해제 기류가 강해지면서 가장 먼저 들썩인 분야는 패션·뷰티 등 유통업계다. 다만 과거처럼 중국인 관광객의 국내 유입을 관광객 수 증가나 매출 반등 차원으로만 보는 접근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콘텐츠·관광·뷰티 산업 전반에서 변화한 중국 시장을 고려해 구조와 전략을 다시 짜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본지 자문위원인 김세연 문화평론가는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방식도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김 평론가는 “최근 중국 관광객의 취향이 단체 관광과 면세 쇼핑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화된 체험과 감성적 소비로 이동했다”며 “이제 ‘한국에 오면 무엇을 사는가’보다 ‘한국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장면을 기록할 수 있는가’가 소비 선택의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여행 이전 단계에서 SNS와 숏폼 콘텐츠를 통해 방문 동선과 소비 계획이 상당 부분 정해지는 흐름이 강해졌다”고 짚었다. 문화·콘텐츠 업계 역시 홍보 위주 접근에서 벗어나 콘텐츠를 실제 체험 동선과 경험으로 구현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 때문에 관광 산업이 입국자 수 증가만으로는 효과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체류형과 문화 기반 관광, 지역 관광 활성화가 함께 진행되며 소비 구조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서원석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 교수는 “면세와 호텔, 리테일 분야의 회복과 함께 중국 청년층의 문화 경험 수요를 고려할 때 관광과 K콘텐츠, 라이프스타일 소비가 결합한 새로운 여행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도 관광·뷰티·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수요층을 세분화한 맞춤형 전략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교수는 “관광 분야의 변화 폭이 클 것으로 보인다. 개별 중국인 관광객의 재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콘텐츠와 유인 요소가 다양하게 설계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교수는 “과거보다 비중이 작았던 고품질 선호 중국인 관광객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고, 이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인당 지출과 체류 기간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류 콘텐츠의 진일보 필요성도 거론된다. 이 교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례를 언급하며 현재의 한류가 포맷과 현지화 전략을 통해 여러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중국은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세계 시장 내 존재감이 아직 제한적일 수 있으나 방대한 역사와 문화 자원을 보유한 만큼 이를 한국의 포맷과 시스템과 결합할 경우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 역시 한한령 해제가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중국 시장과의 연결을 다시 여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서 교수는 “합작 제작, 공동 투자, 기술 협업 등 협력 방식이 확대되면서 기존 수출 중심 구조가 공동 생산 구조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며 “이러한 변화는 비즈니스 모델을 넓히고 K콘텐츠의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평론가는 “과거처럼 완성된 콘텐츠를 제작해 중국에 공급하는 방식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는 것”이라며 “개별 작품의 흥행보다 중국 플랫폼과의 협업 방식, 진입 형식, 운영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기업 평가 기준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한한령 이후의 변화 역시 물량 확대보다는 한국 콘텐츠 산업 전반의 체질과 전략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식시장 영향 한계..."사드 이전 성장성 어려울 것"

주식시장은 이번 한중회담이 굵직한 외교 이벤트였지만 ‘서프라이즈’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지금 중국과 관계 개선에 있어서 시장이 그렇게 환호하고 있진 않다. 주식시장은 이벤트를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성격이 강한 것도 이유”라며 “K뷰티나 K푸드 등 전통적으로 강세였던 분야들은 그간 워낙 안 좋았던 만큼 기존 흐름을 감안하면 좋아지는 측면이 있겠으나 과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이전의 성장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박 여구원은 “중국 내 기업의 기술력이나 원가 경쟁력이 많이 올라왔다. 엔터 산업과 미디어 쪽도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겠지만,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규율이나 기준을 명확하게 낮춘다는 지침이 보이지 않는다”며 “'강한 상승세가 지금 당장 보일 거다'라고 말하는 건 이른 감이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백관열 LS증권 투자전략팀 선임연구원도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커지며 외교적 교류가 활발해진 것은 사실이고 이는 시장 심리에 우호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도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과거에 비해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낮아진 상태다. 결과적으로 중국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얻는 수혜의 강도는 과거보다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산업계, 中과 공급망 안정성 모색⋯자율주행 기술 등 첨단사업 협력해야”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과의 공급망 안정성을 함께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자재나 글로벌 수출 규제 등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한중 간 협력 여지가 있다”며 “최근 중국이 내수 부진으로 남는 물량을 해외 수출로 돌리는 흐름이 나타나는 만큼, 국내 시장에 저가 물품이 대거 유입되거나 품질·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 들어오는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단순히 수입을 늘리거나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교역 과정에서의 기준과 절차를 어떻게 정비할지에 대한 협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 변수로는 희토류가 꼽힌다. 정 연구위원은 “중국은 희토류 원료뿐 아니라 가공 기술과 제품 수출까지 통제하는 방향으로 묶어가고 있다”며 “한국은 희토류 수입 의존도가 80% 수준으로 일본보다 훨씬 높다. 일본은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겠다는 목표 아래 의존도를 60%까지 낮췄지만, 한국은 여전히 취약한 구조”라고 진단했다. 이어 정 연구위원은 “첨단 산업이 확대될수록 희토류 확보는 가격 문제가 아니라 생산 자체를 좌우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사우스 시장도 기회라고 제시했다. 정 연구위원은 “해외 진출의 핵심은 결국 자원과 광물”이라며 “글로벌 사우스에서 안정적인 광물 공급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협력 모델을 만들 여지가 있다”고 피력했다.

다만 AI 분야 협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정 연구위원은 “AI는 기술 개발 측면에서 협력이 가능하지만 제조·데이터 영역은 각국이 소버린 AI를 강조해 쉽지 않다”며 “미국의 반도체·메모리 수출 규제가 완화돼야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중국의 기술 자립 이후 한국 중소기업들은 중간재 수출 급감과 가격 경쟁력 약화 등, 구조가 이미 고착화한 데다 미·중 패권 경쟁과 정치적 제재 같은 각종 변수 등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복원 되더라도 투자와 수출 등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한령과 관계 없이 중국의 기술 자립 등으로 한국 중소기업의 중간재 수출이 늘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인증과 검역 등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어 이 부분의 수출 역시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 교수는 “중국은 (교역이) 쉽지 않은, 많은 학습이 필요한 국가”라며 “자율주행 등 중국의 최첨단 산업과 혁신성을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접목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게 협력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해법을 조언했다.

금융권, 신산업 분야 수요 기반의 '금융 리셋' 필요

금융권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신한금융과 공상은행의 ‘상시 무역금융 인프라’ 구축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통 국가 간 통화 스와프가 외환위기 등 비상시에 대비한 안전장치이지만 이번 민간 스와프 확대는 기업들이 무역 거래 시 위안화를 즉각 조달해 결제에 쓰는 평시 지원 체계에 가깝다”며 “그간 홍콩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던 위안화 조달 경로를 중국 본토 대형 은행으로 다변화해 국내 기업의 조달 비용을 낮추고 안정성을 높인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 같은 금융 인프라 확충이 곧바로 중국에 진출한 금융사의 수익성 개선이나 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고도 했다. 지난 10여 년간 국내 은행들의 중국 영업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이유로 지목했다. 지 연구위원은 실물 경제 변화에 맞춘 ‘금융 리셋’의 필요성을 제언하며 “한한령 해제와 맞물려 서비스·콘텐츠 등 신산업 분야의 수요가 먼저 살아나야 금융의 공간도 열린다. 단순 자금 대출을 넘어 변화된 산업 구조에 최적화된 수평적 협업 모델을 구축하고 정치적 리스크를 완충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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