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 권리 보호 취지와 달리 신인 창작자 설 자리 좁아지고 불법 유통 심화 우려
이해 관계자와 소통 없는 졸속 추진 논란 여전…규제 대상 모호·중복 규제 우려도
지나친 규제와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조차 없이 발의돼 21대 국회에서 좌초됐던 문화산업공정유통법(문산법)이 재추진된다. K콘텐츠 생태계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이 종주국으로서 위상을 떨치고 있는 웹툰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문산법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법안의 취지와 달리 창작자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창작자 권리 보호를 위해 플랫폼을 규제하는 문산법의 규제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중복 규제 문제, 웹툰 산업계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안은 플랫폼이 창작자에게 지식재산권 양도를 강제하거나 판매 촉진 비용을 전가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해당 법이 통과될 경우 웹툰·웹소설의 성장을 견인한 비즈니스 모델인 '기다리면 무료(기다무)', '매일 열시 무료(매열무)' 등의 서비스가 제한될 것으로 관측된다.
기다무는 초반 회차를 무료로 공개해 독자들의 흥미를 끈 뒤 뒷이야기의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문산법 도입으로 플랫폼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면 플랫폼에서는 흥행이 보장되지 않은 신인 작가나 비인기 작가 작품 보다는 검증된 인기 작가의 작품만 프로모션을 지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유명 작가 작품에만 독자가 쏠리고 작품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발생한다.
또한 웹툰 불법 유통의 심화로 창작자의 권리 침해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무료로 작품을 보기 어려워진 이용자들이 불법 유통 경로를 찾고 이를 이용한 불법 유통 사이트가 양산되는 등 창작자 권리를 도모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한 문산법이 불법 유통을 더욱 심화시키고 창작자 권리와 수익을 침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산법은 업계 뿐만 아니라 소비자 후생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할인 및 무료 프로모션이 사라지면 콘텐츠 소비자들에게도 경제적 불이익은 물론 새로운 콘텐츠를 접할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산법은 4대 콘텐츠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정부 정책과도 역행하는 법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7년까지 만화·웹툰 산업 규모를 4조 원으로 끌어올리고 수출 규모를 2억5000만 달러(약 3339억 원)로 키우겠다는 계획이지만 문산법으로 사업자들이 규제를 받게 될 경우 K-웹툰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가 웹툰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사업자들의 성장 동력이 제한되는 동안 빅테크들이 대규모 자본을 앞세워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이미 웹툰협회, 한국웹툰작가협회, 한국만화스토리협회, 한국만화웹툰학회, 한국웹툰산업협회, 우리만화연대 등은 문산법 추진을 반대하고 있다.
규제 대상인 창작자와 기업에 해당 법안에 대한 사전 청취는 물론 의견 수렴 과정에 없어 비판을 받아왔는데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은 “법안을 재발의하는 과정에서 적용 대상자인 만화, 웹툰 관계자들에게 법안 취지를 설명하고 폐기된 법안에서 어떤 부분을 보완할지 등의 소통이 필요한데 이러한 과정이 전혀 없어 당혹스러운 입장”이라며 “웹툰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모두 어려운 시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혁신을 장려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어야지,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