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공정은 과연 공정한가…넷플릭스 '오징어 게임'과 능력주의

입력 2021-09-2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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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와 사회를 바라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어린 시절 놀이를 소재로 삼은 독특한 상상력과 데스게임 장르에 충실한 섬뜩한 연출로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게임에서 이기면 거액의 상금을 드립니다."

알 수 없는 명함을 준 정체불명의 한 남자(공유 분)의 제안. 마땅한 직업도 없이 경마장을 전전하던 기훈(이정재 분)은 돈에 눈이 멀어 그의 제안에 응한다. 어딘지도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내던져진 게임장. 456명의 사람에게 주어진 게임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다.

제한 시간 안에 술래를 피해 선에 들어오면 되는 간단한 놀이. 움직이면 탈락, 문제는 탈락하면 총에 맞아 황천길을 건넌다는 점이다. 피 튀기는 살벌한 무궁화꽃 놀이로 255명이 목숨을 잃는다. 화제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Squid game, 2021)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실제 사람을 죽이는 광기의 게임에 놀란 사람들은 투표로 게임을 중단시킨다. 상금 456억에 대한 욕심도 두려움을 막지는 못한다. 그렇게 게임을 마치고 다시 나온 바깥세상. 산더미처럼 쌓인 빚과 아픈 어머니가 기훈을 맞이한다.

어머니는 당뇨로 발가락이 문드러졌지만, 병원비도 월세도 없어 퇴원한다. 기훈은 병원비를 마련하려 애쓰지만 사채에 신체 포기각서까지 쓴 상황에서 당연히 돈 나올 구석은 없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벼랑 끝인 상황. 결국 기훈은 상금을 노리고 목숨을 건 게임에 다시 뛰어든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기훈(이정재)은 뛰어난 두뇌와 신체적 능력은 없으나 선한 의지와 순발력, 운으로 경쟁을 헤쳐나간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연일 큰 주목을 받은 화제작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목숨을 건 데스 게임을 통해 치열한 경쟁 사회를 은유한다. 어린 시절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설탕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같은 추억의 놀이가 경쟁의 무대가 됐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기구한 사연 속에 생존을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주최자들은 이 치열한 경쟁 속에 '공정'을 강조한다. 편법을 써 미리 게임을 알아낸 자를 본보기로 죽일 정도다.

주최 측에서는 공정과 경쟁을 강조하지만, 실제 게임은 공정하지 않게 돌아간다. 운과 힘, 정치력 같은 요소가 생존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특히 밤마다 불이 꺼진 후 벌어지는 이른바 '약자 솎아내기'는 약육강식의 절정을 이루며 여성과 노인 같은 약자를 밀어낸다. 경쟁자를 죽이면 상금이 적립되는 규칙 아래 벌어진 암묵적인 살인은 공정한 경쟁이라 보기 힘들다.

▲456명의 게임 참가자들은 456억 원의 우승 상금을 놓고 유혈이 낭자한 경쟁을 벌인다. 작품은 데스게임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곳곳에 한국적인 정서를 녹여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이는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경쟁도 마찬가지다. 작품 속 기훈의 말처럼, 현실은 목숨을 건 게임보다 더한 지옥이다. 특히 능력에 따른 차별이 공정하다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공정하지 않은 상당수의 경쟁이 공정으로 둔갑한다. 점수로 합불을 가려내는 대학 입시, 정규직 입사 시험이 대표적이다. 이런 시험의 과정은 대부분 부모의 경제 수준이 큰 영향을 미친다. 성별, 장애 여부, 지역 간 격차도 합불을 가리는 주요 기제로 작용한다.

이러한 불평등 속에 '혐오'와 '타자화'가 덤으로 따라온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책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극중 한미녀(김주령 분)는 생존을 위해 강인한 남성을 유혹하며 자신의 신체를 도구화한다. 또 편의를 위해 '오빠'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역설적이게도 경쟁 사회를 예리하게 지적한 '오징어 게임'도 정작 낮은 인권 감수성으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여성과 외국인에 대한 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주요 여성 인물 중 한 명인 한미녀(김주령 분)는 편의를 위해 남성에게 '오빠'란 단어를 남발하며 육체를 도구로 활용한다. 코리안 드림이 좌절된 외국인 노동자 알리(아누팜 트리파티 분)는 '사장님 나빠요' 그 이상의 정체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2021년 화제작에 등장하기엔 낡은 설정이다.

또 보디 페인팅을 한 여성들이 발 받침대나 테이블처럼 쓰인 장면도 문제로 지적됐다. 경쟁과 불평등에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도 섬세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을 할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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