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판결문 비실명화 사업소 운영…인력 부족 우려도

기업 관련 사건 판결문 상당수가 비공개되는 가운데, 비공개 결정 사유를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통계와 운용 현황도 별도로 관리되지 않고, 부분 공개를 위한 행정적 여력 역시 충분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판결문은 선고 이후 당사자에게 송달되며, 이 과정에서 열람·복사 제한신청 안내가 이뤄진다. 당사자가 제한신청을 할 경우 결정 전까지 제3자의 열람이 제한되고, 법원은 신청이 없더라도 사생활 비밀이나 영업비밀 등이 포함된 경우 직권으로 열람을 제한할 수 있다.
판결문 공개 여부는 민사 사건의 경우 ‘민사판결서 열람 및 복사에 관한 규칙’, 형사 사건의 경우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요건에 따라 판단된다. 민사는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이나 영업비밀이 포함된 경우, 형사는 국가 안전보장이나 공범의 증거인멸 우려, 관계인의 명예·사생활 침해, 영업비밀 침해 우려 등이 있을 때 열람 제한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 같은 판단 과정과 결과가 별도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관련 법령에 따라 사건별로 판단하지만, 그 기준과 적용 경위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구체적인 결정 내용 등 관련 사항을 별도로 파악·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열람 제한신청 수용 비율이나 처리 기간 등 관련 통계 역시 관리되지 않고 있다. 기업 사건에서 영업비밀을 이유로 한 제한신청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지도 파악되지 않아, 유사 사건이라도 재판부에 따라 공개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재판부가 기업 측 주장을 듣고 판단하는 구조로, 내부적으로 통일된 기준이 마련돼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도상으로는 영업비밀이 포함된 경우 해당 부분만 특정해 비공개 처리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다만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판결문에 포함된 정보를 하나씩 검토해 공개 여부를 판단하는 비실명화 작업이 필요하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이 작업은 사건의 문맥을 바탕으로 특정 정보가 개인이나 기업을 식별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으로, 기계적 자동화가 어렵고 사람이 직접 검수·편집해야 한다. 특히 기업 간 분쟁이나 조세·금융 사건은 거래 구조와 수익률 등 다양한 정보가 포함돼 영업비밀 해당 여부를 일일이 가려야 해, 판결문 검토 부담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영업비밀이 포함된 부분만 선별해 공개하는 방식을 확대 적용하더라도, 이를 감당할 인력과 행정 여력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판사는 “추가 인력과 행정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며 “판사 인원도 부족해 판결이 지연되는 상황인데 그런 방식을 확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판결문 비실명화 작업은 법원행정처 재판사무국 종합민원과 산하 ‘비실명화 사업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부 인력은 8명에 불과하고, 외부 용역 인력 96명이 작업을 전담하는 구조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향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비실명화 자동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판결문 내용의 문맥을 파악해 비실명화 대상을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 유형과 법관 및 법원사무관 등의 서술 방식도 다양하고, 비실명화 대상 범위도 유동적이어서 사람이 직접 검수·편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