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다음은 한국…‘對美투자 패키지’ 확대 요구 거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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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투자 전략’ 새 시험대
AI 전력 인프라·핵심소재 공급망
소프트뱅크·일본제철 등 참여 의사
다카이치 “매출확대·사업확장 기대”

‘에너지 투자’ 중심의 일본과 달리
韓 전기차·배터리 등 제조업 진출
공급망 등 투자 확대 땐 재무 부담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미국이 동맹국 투자를 산업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한국 기업의 대미 전략이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이 에너지·핵심광물·전력 인프라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먼저 확정하면서 관세와 규제 완화를 투자와 맞바꾸는 구조가 현실화됐다. 향후 한국에도 유사한 형태의 ‘대미 투자 패키지’ 요구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번에 확정된 3개 프로젝트는 인공지능(AI) 전력 인프라와 에너지, 핵심소재 공급망 구축에 초점이 맞춰졌다. 1차 투자 규모는 총 360억달러(약 52조원)로 이 가운데 330억달러가 오하이오주 9.2GW(기가와트시)규모 가스 화력발전소 건설에 투입된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9기와 맞먹는 전력 생산량이다.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급증한 전력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로 해석된다.

텍사스 심해 원유·가스 수출 인프라에는 약 20억달러가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의 에너지 수출 능력을 구조적으로 확대하는 투자다. 조지아주에서 추진되는 약 6억달러 규모의 합성 산업용 다이아몬드 설비는 반도체·항공·자동차용 정밀가공 소재를 자국 내에서 조달하기 위한 공급망 재편의 일환이다.

일본 정부는 특수목적법인(SPV)을 통해 자본을 투입하고, 미국은 부지·인프라를 제공하는 구조를 택했다. 수익은 일본이 확보하되, 전략 자산은 미국에 남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넘어 산업 기반을 미국 내에 고정시키는 모델로 평가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미국이 세계 에너지 공급국으로서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새 시설은 수출과 에너지 패권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8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중요 광물과 에너지, AI·데이터센터 등 경제 안보상 중요한 전략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이 협력해 공급망을 구축, 양국 간 유대를 강화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프로젝트 발표 직후 일본 주요 기업들도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산업상은 “오하이오 발전 사업에 소프트뱅크그룹, 도시바, 히타치제작소 등이 참여를 검토하고 있으며, 텍사스 원유 수출항 사업에는 미쓰이OSK라인, 일본제철, JFE스틸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조지아 합성 산업용 다이아몬드 설비와 관련해선 “아사히다이아몬드공업과 노리타케가 현지 생산 제품의 구매를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투자가 일본 기업의 매출 확대와 사업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대미 투자 구상이 구체화하면서 비슷한 투자 약속을 한 한국에도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한국 기업의 투자 구조다. 일본이 액화천연가스(LNG)와 자원 개발 등 에너지 중심 투자에 무게를 둔 반면 한국은 전기차와 배터리 등 제조업 중심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해 왔다. 이미 생산시설 투자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에서 에너지와 소재, 공급망 인프라까지 투자 범위가 확대될 경우 기업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의 첫 대미투자 지역 중 하나인 조지아주는 우리 기업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 합작 공장 등이 집중된 지역으로 미국 남동부 전기차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미국이 핵심광물과 에너지 인프라 투자까지 결합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단순 생산기지를 넘어 전략 산업 거점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산업정책 방향이 ‘시장 접근 조건으로서의 투자’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과거에는 현지 생산 여부가 관세와 보조금의 핵심 조건이었다면 앞으로는 공급망 전반에 대한 투자 참여 여부가 사업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부품에 이어 반도체와 핵심광물 등 전략 산업으로 규제 범위가 확대되는 흐름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한국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 투자를 통해 정책 리스크를 줄일 수 있지만 수익성 부담이 커지고 투자 속도를 조절할 경우 시장 접근성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고금리 환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요구는 기업 재무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후 나타날 2차 파장도 변수다.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로 글로벌 교역 흐름이 흔들리면서 제3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무역장벽을 높이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 경우 한국 기업은 대미 협상 부담과 동시에 제3국 시장 규제까지 감당해야 하는 이중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 우회수출 단속과 원산지 검증 강화 흐름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멕시코와 아세안 생산기지를 활용해 미국 시장에 접근해온 기업들은 통관과 원산지 증빙 과정에서 행정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동맹국 간 투자 경쟁 구도를 만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일본 사례가 기준선으로 작용할 경우 한국 기업들도 생산 투자 외 영역으로 투자 범위를 넓혀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기업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에너지 협력, 핵심광물 확보, 공급망 연계 전략을 포함한 국가 차원의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배터리 산업 특성상 산업 정책과 통상 전략을 결합한 대응이 요구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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