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직장인의 '별' 옛말 된 요즘 임원

입력 2024-11-24 15:00수정 2024-11-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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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과 식사 자리에서 "이번에는 별 다셔야죠" 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였다. 예전 같으면 '무슨 마음에도 없는 말을'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번에는 진담이 절반 이상 섞여 있다고 해석했다.

일반 사원으로 입사할 경우 보통 20년 이상 치열한 내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임원이 된다. 임원을 달면 그 많던 입사 동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기업에서는 임원 승진을 군의 장성에 빗대어 '별'을 단다고도 한다.

이처럼 누구나 원하던 임원이지만, 요즘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기업 인사 시즌이 되면 임원 승진에 성공한 분들께 축하 메시지를 보내곤 하는데, 올해는 예년처럼 마냥 축하만 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일은 많고 보상은 적어 “승진 원치 않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임원이 됐지만, 돌아오는 보상은 예전보다 적고 희생해야 하는 부분은 크게 늘고 있는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대기업들은 위기 상황이라며 임원의 주 6일 출근을 강제한다. 대기업 한 임원은 "일이 없어도 토요일에 나가야 하니, 책을 읽거나 업무와는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러려고 임원이 됐나 싶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과거 같은 혜택은 줄었다. 글로벌 경영 불확실성으로 대내외 변수가 커지며 임원이 져야 할 책임의 무게는 커졌다. 임원 승진을 통한 임금 인상의 매력도 떨어졌다. MZ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조직 내 결속력과 권위, 소통은 무너졌다.

대기업 임원의 목숨은 경각에 달린 신세다. 대기업에서 임원을 10년 이상 하기 위해선 천운을 타고 나야 한다. 요즘 기업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 1~2년 새에 짐을 싸는 경우도 많다. 임원은 퇴직금을 정산하고 퇴사한 뒤 재입사 형식으로 매년 일 년짜리 계약하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연말 인사철이 되면 사무실에 있는 개인 물건들을 하나둘씩 집으로 가져가는 게 습관이라는 임원도 있다. 다행히 재계약이 되면 가져갔던 물건들은 다시 하나씩 제자리에 갖다 놓는단다.

대기업 임원들의 퇴직 통보도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퇴직 2~3일 전 자신의 거취를 통보받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간혹 인사 당일 아침에야 퇴직 통보를 받는 황당한 예도 있다.

과도한 업무·책임 분산해 리더 키워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MZ세대들은 팀장이나 임원을 달아준대도 싫다고 한다. 국내 한 취업 플랫폼 설문에선 2030 직장인 과반이 “임원 승진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책임지는 위치가 부담스럽다’가 압도적이었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채용 컨설팅 기업 로버트 월터스가 영국 Z세대를 대상으로 한 승진 관련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중간 관리직을 원치 않았다. 10명 중 7명은 ‘중간 관리직은 스트레스가 많고 보상은 낮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미 경제 매체 포브스는 "기업 관리직이 공석으로 남는 경우가 늘었다"며 "가장 경험 많고 똑똑한 구성원이 간부가 된다는 생각은 사라졌다"고 했다.

문제는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당장 주변에 있는 임원을 한번 보자. 임원이 된 후, 사생활 없이 몸만 망가지는 경우는 수두룩하다. 아무리 임원 연봉이 많이 오른다 해도, 비트코인 오르는 속도에 못 미친다.

리더를 못 키우는 조직일수록 앞날은 더 불확실하다. 조직은 임원에게 확실한 보상을 해 주고, 과도한 업무와 책임은 분산시켜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리더의 부재 속에 기업은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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