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제조사 입장 모호, 유통점 대규모 폐업 위기
정부가 통신 서비스와 휴대폰 단말기 구매를 분리해 판매하는 이른바 ‘단말기완전자급제’(완전자급제) 도입을 또다시 추진하면서 관련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이미 범사회적 기구를 만들어 수차례 완전자급제 도입을 논의했지만 합의하지 못한 채 결정을 유보한 바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통신비 인하 주요 수단으로 지목되면서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지만, 실제 도입까지는 갈 길이 멀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정감사에서 정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이 완전자급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기존 완전자급제보다 더 강력해진 단말기 완전자급제 2.0(가칭) 법률(안)을 국감 직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내놓은 법률안은 이동통신 서비스와 단말기 묶음 판매를 전면금지하고 판매 장소까지 분리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유영민 장관도 완전자급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유 장관은 10일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 “완전자급제 필요성에 동의한다. 도입되면 시장이 건강하게 가격 경쟁에 나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완전자급제를 도입해야 하는 당사자들은 생각이 좀 다르다. 완전자급제가 통신비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데다 일선 판매점의 대규모 폐업으로 일자리난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완전자급제 이슈를 처음 꺼냈던 이통 3사는 큰 틀에서는 도입에 긍정적이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단말 담당 부서의 역할 축소와 추후 있을 부작용 등 예측이 어려운 점이 있어 신중한 입장이다. 현 정부가 통신비 인하 기조를 계속 비용 절감이 절실한 이통사로서는 완전자급제를 통해 판매점 주머니로 들어가는 판매장려금 등 마케팅비를 줄여야 한다. 이통 3사는 연간 마케팅비로 7조~8조 원을 지출하고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완전자급제 도입 시 약 연 4조 원의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선택약정할인 25%에 대한 비용 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 선택약정할인 25% 제도는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 명목으로 만들어졌다.
완전자급제 도입으로 단말기 판매와 통신 서비스 가입이 분리되면 선택약정할인 25% 제도가 없어지거나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안이 마련되지 않은 만큼 말을 아끼고 있다. 실제로 유 장관은 “완전자급제가 시행되더라도 (통신비 인하의 핵심인) 선택약정할인 25%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통사 관계자는 “단말기 자급제가 도입되면 단말기와 통신비가 분리되어 가계통신비가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여러 조건이 맞물린 이슈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을 아꼈다. 삼성전자, 애플, LG전자 등 단말기 제조사들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완전자급제 시행으로 인한 유통구조조정으로 대규모 폐업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점도 부담이다.
전국이동통신협회(KMDA)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이통사에서 받는 판매수수료가 주 수입원인 상황에서 휴대전화 판매와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을 분리하는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며 “통신비 인하가 아닌 ‘유통망 소멸’이 목적인 완전자급제를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KMDA에 따르면 국내 유통점(대리점·판매점) 숫자는 2만303곳으로 7만 명이 종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