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유럽연합(EU)의 반대에도 자국 부실은행 문제 해결을 위해 수십억 유로를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납세자가 아닌 채권자가 구제자금을 대야 한다’는 EU의 규제에도 필요하면 국민 혈세로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문제는 구제금융과 관련한 EU의 새로운 규정이 첫 시험대에 오른 상황에서 이탈리아 정부가 이를 무시하는 방침을 관철한다면 해당 규정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에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반독점 집행위원이 이탈리아 정부가 EU의 이른바 ‘베일-인(bail-in)’ 규정을 어기지 않고도 부실은행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한 상황이다. 베일-인은 채권자가 부실 금융기관의 손실을 일부 떠안거나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금융기관을 돕는 방식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채를 조정하는 구제금융(bail-out)과 달리 정부 차원의 추가 자금지원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탈리아 은행업계는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결정 이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 가장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로 브렉시트 결정이 난 후 이탈리아 은행들의 주가는 3분의 1이 폭락했다. 이달 은행 스트레스테스트 결과가 발표되고 오는 10월 초 이탈리아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어 이탈리아 은행권을 둘러싼 우려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특히 헌법 개정 국민투표는 렌치 총리의 정치적 운명이 걸린 탓에 브렉시트 이후 유럽 역내 정치에 있어서 최대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탈리아도 그간 나름대로 부실은행 개입에 대한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했지만, EU 측으로부터 모두 퇴짜를 맞았다. 이에 이탈리아가 독자행동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부실은행 구제기금인 아틀란테 규모를 늘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문제가 가장 심각한 은행인 몬테데이파스키 등의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것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위 정부 관계자는 “우리는 단독 행동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EU와 독일은 이탈리아가 베일인 규정을 어기지 않고도 부실은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EU는 지난주 이탈리아의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500억 유로 자금을 투입하는 것으로 허용하는 예비방안을 승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