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래 채권발행 규모를 GDP 대비 최대 50% 수준으로 늘리기로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상 처음으로 해외 국채 시장에 발을 들여 놓는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자국 내에 돈 가뭄이 극심해지자 자금 수혈을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9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5년 내 국채 발행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최대 50%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올해에는 이 비율을 6.7%로, 내년에는 17.3%로 늘릴 계획이다.
내년 1월 시작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번 계획과 관련해 사우디 당국은 해외 발행 국채 등 정부 부채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는 기관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사우디의 해외 국채 발행 주간사 자리를 차지하고자 사우디 당국에 ‘요구받지도 않은’ 제안서를 제출했다고 FT는 전했다.
사우디가 국채 발행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 7월에도 8년 만에 국채를 발행해 40억 달러를 조달한 바 있다. 저유가로 공공지출이 많아지고 재정 부담도 늘어난 영향이었다. 지난해 배럴당 115달러에 달했던 유가는 현재 50달러 선을 밑돌고 있다. 저유가는 국가 재정의 80%를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는 사우디에 직격탄이 됐다.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7370억 달러(약 854조원)에서 올해 9월 시점에는 6470억 달러로 줄었다. 이는 3년래 최저 수준이다.
유가 하락세가 장기화하면서 사우디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사우디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조정했다. 유가 하락으로 재정적자가 확대된 가운데 앞으로도 재정악화가 계속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이달 초 또다른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사우디의 신용등급을 하향하지는 않았으나 국가 재정이 계속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사우디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우디는 위기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차입할 수 있으며 이번 계획은 재정 창출 프로그램의 일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국채 발행으로 향후 12~18개월 간 자국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나 민간 부분의 유동성을 남겨두기 위해 자본 조달 통로를 다각화하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한편 사우디는 국제유가 하락에도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지키고자 산유량을 유지하는 기존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