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산 따라 출발선 달라져…맞춤형 금융지원 확대 필요
높아진 분양가에 주거 불안…적정 가격 주택 공급 확대
산업 다변화·역량 강화로 청년 경제적 자립 기회 넓혀야

청년들이 경제적 자립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취업문은 좁아지고 집값은 멀어지는 사이 부모의 자산이 청년들의 미래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노력과 소득만으로 자산을 축적하고 계층을 이동하기 어려워지면서 경제적 박탈감도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 위기를 단순한 취업난이나 주거 문제로 접근해서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일자리부터 자산 형성, 주거 안정까지 이어지는 ‘경제적 자립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일 본지가 경제·금융·노동·부동산 전문가(자문위원) 4명에게 청년 경제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물은 결과, 노동시장 진입 장벽과 자산 양극화, 주거비 부담, 편중된 산업구조가 주요 문제로 지목됐다. 프랑스에서 청년 시위가 사회·경제적 불만과 맞물려 확산한 가운데 한국 역시 청년층의 누적된 불안과 박탈감을 해소할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본지 자문위원인 전혜선 열린노무법인 대표는 청년들의 경제적 박탈감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노동시장 진입 장벽을 꼽았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해 육성하기보다 즉시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데다 인공지능(AI) 확산이 신규 채용 수요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 대표는 “기업은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 약 1년간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업무를 가르쳐야 하는데 최근에는 신입이 해야 할 자료 조사와 정리 업무를 AI가 대부분 대신 한다”며 “신규 채용의 필요성 자체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직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노동시장 내부의 격차도 문제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안정적인 고용조건을 누리는 반면, 취업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은 그 혜택에서 배제되는 구조다.
전 대표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경영 성과급까지 분배받으며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취업 전선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청년들은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법으로는 청년 채용을 촉진할 기업 인센티브 강화를 제안했다. 신입사원 교육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기업이 감수할 수 있도록 채용 장려금과 세제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 세대인 청년을 기업이 다시 고용할 수 있도록 강력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임금체계의 격차 개선도 주문했다.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경제적 자립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로부터 이전받는 자산의 차이가 청년들의 주거와 자산 형성 기회를 좌우하면서 출발선부터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 경제위기의 핵심으로 자산 양극화를 꼽았다. 기술 발전의 성과가 인적·물적 자본을 보유한 계층에 집중될수록 자산이 부족한 청년들이 체감하는 불평등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소득의 양극화보다는 자산의 양극화가 지금 더 심해지는 상황”이라며 격차를 완화할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부모의 경제력과 관계없이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 최소한의 초기 자산을 확보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일정 금액을 적립해 종잣돈을 마련해 주고, 청년미래적금 등 정책금융상품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소득과 부채, 자산 수준에 따른 맞춤형 금융지원도 필요하다고 봤다.
다만 내 집 마련을 지원하기 위한 무분별한 대출 확대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가계부채는 증가율이 낮아졌을 뿐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대출을 늘리는 건 결국 단기적인 효과를 낼 뿐이기에 재개발을 통해 주택 문제의 핵심인 공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거 문제는 청년들의 자산 격차를 더욱 벌리는 요인으로 꼽혔다. 높은 주거비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저축과 자산 축적의 여력까지 줄어들기 때문이다.
본지 자문위원인 임미화 전주대 부동산국토정보학과 교수는 청년 주거위기의 본질을 주택시장 진입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불안감에서 찾았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상승하면서 근로소득만으로 내 집을 마련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임 교수는 “청년들이 느끼는 가장 큰 위기는 주택 소유와 자산 형성 기회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라며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금융지원 혜택이 있더라도 분양가가 높아 원리금 상환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택 소유 지원에 앞서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도록 하기보다 소득 수준에 맞는 주거 공간을 확보하고, 자산을 축적해 향후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주택 지분을 단계적으로 취득하는 지분적립형 주택 공급 확대를 제안했다. 신혼부부뿐 아니라 1인 가구의 수요를 반영한 주택 유형을 늘리고, 저소득 청년에게는 직접적인 월세 지원을, 자체 부담 능력이 있는 청년에게는 세제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임 교수는 “청년들이 주거 안정과 자산 형성의 기회를 확보하려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주택이 충분히 공급돼야 한다”며 주택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산업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특정 산업과 대기업에 성장의 성과가 집중되는 구조에서는 청년층 전반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확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본지 자문위원인 곽범국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산업 다변화를 중장기 해법으로 제시했다. 곽 전 사장은 “국내 경제가 애초에 균형 성장을 추구하는 구조가 아니었던 만큼 반도체와 일부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가 형성됐다”며 “산업 다변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지원정책도 단기적인 현금성 지원보다 교육과 역량 개발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금성 지원은 생활비로 다 소진된다”며 “청년 개인의 지식과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취업 기회 확대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국내 노동시장만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국가가 교육과 진출 기회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곽 전 사장은 “청년 일자리 문제는 국내에서만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해외에 좋은 일자리 기회가 널려 있는 만큼 우수한 청년 인력들이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