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원순의 싱크홀

입력 2014-08-29 10:46수정 2014-08-2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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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석 부동산시장부장

2012년 2월 18일 오후 4시 43분. 인천시 서구 왕길동의 지하철 2호선 공사장에서 지반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왕복 6차선 도로가 직경 12m, 깊이 27m 정도의 깊이로 둥글게 꺼지면서 5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국민은 경악했고, ‘싱크홀(sinkhole)’은 공포의 대상이 됐다. 이때부터 땅이 주저앉는 유사 사고를 ‘싱크홀’로 통칭해서 부르게 됐다.

최근 서울 석촌 지하차도 인근 등지에서 잇따라 발생한 싱크홀로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파악된 도심 싱크홀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다.

환경부가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지난 7월까지 전국 53곳에서 싱크홀이 발생해 사상자 4명과 차량 4대가 파손됐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보면, 서울시가 2012년 4월까지 서울 전역에서만 197개 싱크홀을 발견했고 이 중 2번 이상 반복된 27곳을 위험지역으로 지정했다.

서울시처럼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싱크홀이 정부의 공식 집계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고, 국민 불안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경기개발연구원의 ‘도시를 삼키는 싱크홀, 원인과 대책’ 연구보고서를 보더라도 국민 95.2%가 불안하다고 답할 정도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2년여 동안 지반·지질 조사 등 싱크홀의 근본 원인은 파악하지 않고 930억원을 들여 도로포장 개선사업에만 몰두해 왔다. 그 사이 서울에서는 63개의 싱크홀이 추가로 생겼다. 이번에 도로 일부가 깊이 5m로 무너지자마자 서울시에서 토사 160t을 메웠는데도 2일 후 또 2m가 침하된 것처럼. 전형적인 땜질식 처방이 아닐 수 없다.

싱크홀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머리를 숙였다.

박 시장은 지난 25일 라디오에 출연, “서울시에서 (사고가) 벌어지면 무조건 서울시장인 제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 어디서든 분야와 상관없이 시민 안전에 이상이 발생하면 저와 서울시가 어떻게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모두 ‘내 탓’이라는 것인데. 그의 뒤 이은 발언들을 보면 ‘내 탓’이라는 진정성이 영 미덥지 않다.

그는 구렁이 담 넘듯, 사고 책임을 석촌 지하차도 인근의 지하철9호선 시공사에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심지어 잇따른 싱크홀이 ‘지하철9호선 공사 때문에 발생했을 경우’라는 가정법까지 써가면서 “법적 책임은 시공사 측에 있다”,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놨다. 설령 나중에 시공사의 잘못으로 결론이 난다고 하더라도, 서울시장의 발언은 너무 앞서갔다. 이쯤 되면 ‘내 탓’이 아닌 모두 ‘네 탓’으로 들린다.

지하철9호선 공사 발주처가 엄연히 서울시고, 공사현장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기관도 서울시다.

시공사가 박 시장 취임 10개월이 지난 시점인 2012년 8월 시공계획서를 제출할 당시부터 모두 4차례나 서울시에 공사구간 지반의 취약성과 공사 기법을 모두 보고했지만 시는 대책 마련을 지시하지 않았다.

결국 서울시가 사전에 문제를 파악하고 방관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시공사 탓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전문가의 비판이 괜한 게 아니다.

싱크홀에 대한 서울시의 대처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큰 문제 아니다’라는 식으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가롭게 싱크홀 대신 ‘도로 함몰이 맞네’ 식의 용어 타령이나 하고 있다. 반대로, 여론이 안전하다고 할지라도 서울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안전’이 최종 확인될 때까지 느슨함을 다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느슨함을 다잡아왔을까. 박 시장은 어김없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인부 7명이 사망한 ‘노량진 수몰 사고’에 이어 방화대교 접속도로 상판 붕괴 등 안전사고가 터질 때마다 종합대책 마련 운운하며 뒷북만 쳐왔다. 시민이 불안해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도심 싱크홀은 무분별한 지하개발과 지하 시설물 관리 부실이 자초한 인재(人災)로 귀결되고 있다.

박 시장은 지금이라도 지하수 사용 실태와 함께 상·하수도관이나 지하철, 전기배선 등 다양한 지하시설물이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전수조사를 통해 ‘통합지반재해시스템’ 구축과 같은 체계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박원순 시장의 사과가 곧이곧대로 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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