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인수·합병 새바람 ‘파괴적 혁신’ 예고
고(故) 스티브 잡스 당시 최고경영자(CEO)는 “와이드 스크린 터치 방식의 아이팟(MP3), 혁신적 모바일폰, 획기적 인터넷 기기, 이것은 각각의 3가지 기기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기기”라고 선언하며 아이폰을 세상에 처음 소개했다.
이듬해 7월 미국에 출시된 아이폰 3G는 출시 3일 만에 100만대가 판매됐다. 뒤늦게 상륙한 국내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2009년 3GS 모델로 국내에 첫선을 보인 아이폰은 출시 100일 만에 40만대, 넉 달 만에 50만대가 팔리며 판매 기록을 경신해 나갔다.
2010년에는 삼성전자가 갤럭시S를 출시하며 아이폰에 도전장을 냈고, 스마트폰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승승장구할 것처럼 보였던 스마트폰 시장도 이제 정체기에 접어들며 업체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업계 구조조정 가속화= 부동의 세계 1위 휴대폰 업체이던 핀란드 노키아가 무너졌다. 스마트폰 시대에 뒤처지며 점유율이 뚝 떨어진 것이다. ‘오바마폰’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블랙베리도 전체 임직원의 40%를 감원하는 등 위기에 빠졌다. 모토로라와 HTC 등도 마찬가지다. 국내 휴대폰 3위 업체 팬택은 창업주 박병엽 부회장이 물러나고 전체 직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800여명이 무급휴직으로 6개월간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삼성전자와 애플이 양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 자체가 정체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특히 세계 스마트폰 1위(삼성전자)와 3위(LG전자) 기업이 있는 한국은 스마트폰 성장 정체가 가장 빨리 온 나라다.
최근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올해 한국의 스마트폰 시장 규모를 전년(3070만대)보다 14% 줄어든 2600만대 수준으로 예상했다. 2007년 이후 우리나라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건 처음이다. 미국과 중국, 인도 등 다른 나라들은 조금씩 성장할 전망이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예전의 감동을 다시 보여주지 못하는 스마트폰 신모델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배은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비자가 새 성능의 수준을 식별하기 어려워지며 지불 가치 역시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 기존의 성공 공식을 깨뜨리는 ‘파괴적 혁신’에 성공하는 기업이 스마트폰 3.0 시대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합병, 전략 변경… 살길 찾기 바쁘다= 스마트폰 업계 구도에도 인수·합병(M&A)을 통한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업체이자 안드로이드 진영의 맹주인 구글은 지난 2011년 8월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3년 9월,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노키아를 품에 안았다.
IT·전자 업계를 뒤흔든 두 번의 인수합병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부문 최강자가 하드웨어 강자를 인수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부품과 완제품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스마트폰을 만든다면, MS-노키아, 구글-모토로라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수직계열화을 이룬 셈이다. 특히 구글과 MS는 각각 안드로이드와 윈도폰이라는 고유의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계 1·2위 삼성전자와 애플도 후발 주자의 추격과 정체된 성장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략은 비슷하다. 중저가 라인업 확대다. 고가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 삼성전자는 올해 국내시장에 벌써 9종류 이상의 스마트폰 신제품을 내놨다. 지난해까지 갤럭시S 시리즈와 노트 시리즈 두 종류의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부했던 전략을 상당 부분 수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재팬의 이시이 게이스케 전무는 “최상위 제품만 판매하며 그동안 ‘고급’ 이미지를 고집해온 기존 전략을 변경해 일본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디자인과 기능 등을 모색해 다양하게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 역시 아이폰5C라는 보급형 제품을 출시하는 등 제품 라인업 다양화에 힘쓰고 있다. 기존의 프리미엄 고수 전략을 버리고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힘으로써 신흥국 시장에서 점유율 확대를 노린다는 설명이다.
심수민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영원할 것만 같았던 MS와 노키아라는 두 제국이 ‘스마트폰 혁명’으로 인해 순식간에 몰락해 합병에 이르게 된 사실은 삼성전자가 미지의 영역인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 ‘갤럭시 기어’로 과감하게 출사표를 던지는 이유와 일맥 상통한다”며 “그들은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충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체험했으며 바로 지금이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의 주도권을 선점하는 출발선임을 절실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