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8위 동양그룹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한때 재계순위 5위까지 올랐던 56년 역사의 동양그룹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동양시멘트, 동양네트웍스 등 5개 주요 계열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동양그룹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동양증권 등 금융계열사들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고 있어 큰 타격은 입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계열사간 순환출자 고리가 얽혀 있어 간접적인 영향권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5개 법정관리사는 그룹 핵심 계열사= 동양그룹의 지배구조는 현재현 회장을 중심으로 ‘동양레저→동양→동양인터내셔널→동양시멘트→동양파워→삼척화력발전소’로 돼 있다. 동양레저는 동양증권도 지배하고 있어 실질적인 지주회사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이번에 법정관리에 들어간 (주)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시멘트, 동양네트웍스 등 5개사는 그룹내 핵심 계열사다. 그룹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신평 관계자는 “동양증권을 지배하기에는 부족한 자금력을 보유한 그룹이 재무사정을 간과하고 무리하게 지배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됐다”며 “차입으로 출자금을 마련한 연결고리 회사는 이자부담이 누적됐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금융계열사들은 이같은 혼란 속에서 한발 비켜나 있다는 점이다. 동양증권의 경우 자본이 1조3000억원으로 국내 증권사 10위권에 속하는 데다 1분기(4~6월) 영업이익도 28억원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동양생명은 불똥을 피하기 위해 계열분리와 사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법정관리를 신청한 계열사(레저, 인터내셔널)가 대주주로 돼 있어 경영권 변동 등 간접적 영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만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일부 금융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력 계열사들은 법정관리 또는 제3자에게 매각될 것으로 보인다”며 “동양그룹은 사실상 해체될 운명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컨트롤타워 해체… 임원들 니 탓, 내 탓 공방= 동양그룹이 사실상 해체되면서 ‘컨트롤타워’ 전략기획본부도 현판을 내렸다. 동양그룹 전략기획본부는 각 계열사 관리는 물론 기존사업 및 미래사업 구조개편 등 그룹의 경영전략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전략기획본부를 총괄하던 김윤희 부사장을 비롯해 김봉수 전략담당 상무, 배진원 홍보담당 이사 등 7명의 임원은 짐을 싸고 있다. 김 상무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장녀 정담씨(동양생명과학 등기이사 겸 동양 마케팅전략본부 상무)의 남편이다.
경영권 와해 속에서 임원진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이달 초 동양그룹 임원들은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를 숨은 실세이자 동양그룹 사태의 핵심 주역으로 지목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속한 자산매각이 중요한데도 김 대표가 사사건건 막아서면서 현 사태가 촉발됐다는 것이다. 곧바로 다음날 김 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동양그룹의 전반적인 구조조정 계획과 실행은 현재현 회장과 전략기획본부에서 이뤄졌다며 반발했다.
여기에 채권단이 알짜 기업인 파워(삼척활력발전소), 시멘트, 증권까지 매각해 상환대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다 현재현 회장은 계열사간 부당거래 혐의로 형사 처벌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동양그룹은 그야말로‘풍전등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력 계열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두뇌인 전략기획본부까지 사라진데다 임원진들까지 진흙탕 싸움을 이어가고 있어 회생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법정관리 이외의 계열사들은 비교적 경영상태가 양호해 제 살길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