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 기업 찾아 고충 해소… 작년 한해 1만 6854㎞ 달려
올해 이순우 우리은행장의 다이어리에는‘○○ 중소기업 방문’을 제목으로 한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가장 최근 일정에는 지난 5일 호남지역 산업단지 방문 기록이 있다. 오는 18일까지 부산·경남, 충청, 강원, 대구·경북 순으로 중소기업 희망 징검다리 투어 일정이 잡혀 있다.
이 행장에게 이 같은 빠듯한 일정은 새삼스럽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모두 130여 중소기업을 찾았고, 취임 첫해인 2011년에도 80여 업체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경영에 반영한 바 있다. 지난해 이 행장이 중소기업인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거리만 해도 1만6854㎞에 이른다.
올해에도 만만치 않은 이동거리를 예고한다. 이 행장은 올해 200여개 중소기업을 방문할 예정이다. 휴일을 빼면 이틀에 한 곳꼴로 중소기업을 찾는 셈이다.
지난 2월 18일 이른 아침. 인천에서 인천지역중소기업청· 중소기업진흥공단과 함께 주관하는 첫 번째 중소기업 희망 징검다리 투어가 시작됐다. 현장에서 중소기업의 애로를 풀어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사업이다.
이 행장은 이날도 중소기업 현장을 방문할 때면 이용하는 9인승 카니발에 몸을 실었다. 행장 전용 승용차인 에쿠스가 있지만, 이 승합차는 그가 말하는 중소기업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의 시작이다.
양복대신 점퍼 차림의 이 행장은 자동차 부품 등을 생산하는 새한산업을 방문, 애로 사항을 청취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잠시 후 남동공단에 위치한 자동차 트랜스미션과 액슬기어 전문업체인 삼공기어공업을 방문하고, 서둘러 간담회 장소인 인천지역 중소기업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행장은 20여명의 중소기업인과 도시락 대화를 통해 자금지원 등 실효성 있는 지원책 마련을 놓고 고민했다.
이 행장의 중소기업 방문은 ‘의례적 만남’이 아니다. 그를 수행하는 임원들의 직책에서도 알 수 있다. 매번 중소기업금융과 여신담당 임원들이 반드시 동행한다. 이들은 전국을 돌며 현장에서 기업인들의 고충을 듣고 자체적으로 해결할 사항은 그 자리에서 해결한다. 또 큰 틀에서 정책적으로 개선할 것들은 중소기업청을 통해 반영하기도 한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처럼 기업금융을 많이 하는 은행은 기업을 살리는 의사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한다”며 “그중에서도 환자가 아프기 전에 증세를 파악하고, 처방할 줄 아는 명의(名醫)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행장이 중소기업 이야기가 나오면 힘주어 말하는‘명의론(名醫論)’이다.
현재 시중은행 중에서 삼성, LG, 포스코, 두산 등 13개 대기업의 주채권 은행을 맡고 있는 곳이 우리은행이다. 이 행장이 중소기업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먼저 다가오는 은행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자 함이다. 이 행장은 이 프로젝트의 해답은 중소기업 현장에 있다고 믿는다.
◇ 기업금융 노하우로 중소기업 키운다 = 이 행장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자금 공급 확대를 통해‘상생과 수익성’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에 나서고 있다.
이 행장은 올해 회사채 차환(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이들 기업들을 선별해 자금 지원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신용등급 A 이하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이들 기업들을 대상으로 직접대출과 ABS(자산유동화증권)에 대한 신용보증 등으로 기업의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 행장은 우선 회사채 시장 경색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을 대상으로 직접 대출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회사채 차환 부담이 큰 기업들은 어느 정도 재무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기업들이 보다 원활하게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에 나설 수 있도록 회사채에 대한 신용보증을 통해 ABS 발행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신용등급이 낮아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기업의 회사채를 유동화전문회사(SPC)에서 인수, ABS를 발행하면 은행에서 신용보증을 통해 신용등급을 높이는 방식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 입장에선 은행의 보증으로 신용도가 높아져 회사채 발행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이 같은 전략은 이 행장이 평소 강조하고 있는 ‘은행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는 역할론에서 비롯된다. 대기업에서 받은 많은 예금으로 수익을 올리고 이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제공함으로써 선순환하게 만드는 역할이다.
이 행장은 “중소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바탕”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만큼 중소기업인들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선제적 금융 지원은 물론 진정한 상생 파트너로서의 인식이 강하다는 속내다. 자금지원 외에 은행이 중소기업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에 대해서도 항상 고민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