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곳 중 11곳 역대 내부출신 CEO 전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최고 경영자(CEO)의 꿈을 꾼다.
기업에서 조직원들의 CEO에 대한 열망은 업무 효율과 성과를 높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 공기업 직원들에겐 단지 꿈 같은 일이다.
실제 금융위원회 소관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정책금융공사, 주택금융공사, 기업데이터, 코스콤, 거래소, 예탁결제원과 기획재정부 소관 수출입은행, 한국투자공사,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14곳의 역대 CEO 196명 중 기재부 출신이 46.9%(92명)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모피아(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라고 불리는 경제관료 출신들의 나눠먹기식 CEO 인사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14곳 가운데 11곳은 역대 CEO 가운데 내부출신 CEO가 단 1명도 없다는 점이다. 이중 1954년 설립된 이후 58년간 단 1명도 내부직원 출신 행장을 배출하지 못한 금융 공기업에 산업은행도 포함돼 있다.
기술보증기금은 역대 이사장 9명이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신용보증기금과 수출입은행은 각각 17명 중 10명, 한국거래소는 35명 중 17명, 예금보험공사는 8명 중 4명, 캠코는 19명 중 9명, 코스콤은 12명 중 7명이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현재 근무 중인 금융공기업 CEO를 보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14개 금융 공기업의 현직 CEO 가운데 8명이 모피아 출신이다. 강만수 산업은행장,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김정국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김주현 예보 사장, 장영철 캠코 사장,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 이희수 기업데이터 대표, 우주하 코스콤 사장 등이다. 금융 유관기관의 협회장까지 영역을 확대하면 더 많아진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김규복 생명보험협회장, 문재우 손해보험협회장, 이두형 여신금융협회장 등이 모두 경제관료 출신이다.
이런 인사 관행이 수십년간 이어지고 있는 것은 현직 경제부처 관료들이 퇴직한 선배들의 ‘일자리’마련을 위해 금융공기업 CEO 자리를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모피아의 금융공기업 CEO 장기 집권은 결국 조직내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먼저 금융공기업 내 직원들의 사기 문제다. 거론된 금융 공기업 중 내부출신 직원으로 입사해 CEO가 된 사람은 6명에 불과하다. 한국거래소 3명, 기업은행 2명, 캠코 1명이다.
정권 실세나 경제관료가 ‘낙하산 사장’으로 내려오는 일이 반복되면서 진취적인 업무 추진보다는 보신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특수은행이나 금융 공기업의 직원들 간에는 “잘해야 임원까지”라는 말이 공식화됐다.
뿐만 아니라 인사는 ‘성과가 아니라 연줄’이라는 의식을 양산하면서 업무 효율과 성과보다는 실세인 낙하산 CEO의 일거수 일투족에만 촉각을 세우는 양상까지 연출되고 있다.
경제관료의 금융 공기업 장기 집권은 금융 공기업 자체의 경쟁력도 떨어지게 하고 있다.
내부직원이 아닌 경제관료 출신의 인사가 내려오면서 그간 공기업에서 추진하던 업무의 연계성보다는 반짝 성과 위주의 정책들이 남발하는 양상이다.
또한 이들 CEO가 부임한 기업에 대한 애착보다는 다음 자리에 대한 탐색에 연연하면서 임기 중 남은 1년은 자리찾기와 보여주기식 1년이라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특히 낙하산 인사 CEO들이 취임 후 조직 파악에 1년 정도 걸려 경영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일부 낙하산 CEO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해 그냥 보은인사로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 조직을 망가뜨린 일도 있다.
이에 대해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경제관료가 관직을 끝낸 뒤 낙하산을 타고 CEO로 입성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면서 “금융 공공기관에서 CEO를 할 생각이라면 1급 승진 이전에 자리를 옮겨서 근무하다 CEO로 승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퇴직 관료에게 전리품 나눠주듯 CEO를 정하다 보니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인사가 낙하산으로 오면서 공기업 자체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 한 전문가는 개별 기업마다 추천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나 3배수 후보를 뽑아 청와대로 넘기는 현행 방식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추천된 후보를 모두 탈락시키고 재공모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것도 문제다. 후임자를 적시에 선임하지 못할 경우 전임자의 임기가 연장되는 편법도 이를 노린 선임 방해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한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최적의 CEO 후보를 찾아내는 시스템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