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허영섭 초대회장 장남, 경영권서 한 발짝 후퇴
녹십자는 지난 2009년 12월 창업주인 고(故) 허영섭 회장의 동생인 허일섭 회장(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된 이후 승승장구 하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 1967년 수도미생물약품판매로 탄생한 2년 뒤 극동제약으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고 허영섭 초대 회장은 서울대 공대를 나와 독일 아헨공대 박사과정 재학 중이던 그는 1970년 귀국해 아버지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가 대주주로 있던 극동제약에 입사했다. 허 초대회장은 1971년 사명을 지금의 녹십자로 변경하고 지난 2009년 11월 타계하기 전까지 백신 개발과 필수의약품 국산화에 힘썼다. 특히 녹십자는 지난 2009년부터 확산된 신종 인플루엔자의 예방백신을 개발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01년 녹십자홀딩스 중심 지주회사 전환=녹십자는 2001년 3월 정기주총에서 지주회사에 대한 사업목적을 추가승인을 받아 생명공학 및 헬스 케어 관련 기업을 사업자회사로 둔 지주회사 체제로 경영시스템을 전환했다.
녹십자의 지분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녹십자의 지주회사는 녹십자홀딩스로 녹십자의 주식 467만8000여주(지분율 51.15%, 2010년 9월30일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다음으로 허일섭 회장 1.87%(16만8069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임원 및 계열사 임원, 허 회장의 친인척들이 1% 미만의 지분율을 보이고 있다.
녹십자홀딩스의 주식은 고 허영섭 초대회장이 주식 56만3340주(이하 2010년 9월30일 기준)으로 지분율 13.06%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허 회장이 44만2309주로 10.26%를 소유하고 있고 고인의 조카딸 허정미가 13만7887주로 3.20%를 보유하고 있다. 박용태 녹십자홀딩스 부회장이 15만3527주(지분율 3.56%)를 보유하고 있으며 목암연구소재단도 32만8701(지분율 7.62%)로 주요 주주에 올라 있다.
현재 녹십자의 지주회사 경영시스템은 헬스케어부문, 제약부문, 해외부문, 재단부문 등 4개 사업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녹십자의 전체 경영전략 수립과 조정, 신규 전략사업의 진출, 출자자산의 포트폴리오 관리 등은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녹십자홀딩스가 담당하고 있으며 의약품의 제조 판매 등 실제 사업은 각 자회사가 수행하고 있다.
◇고 허영섭 회장 타계후 집안싸움 =주목할 점은 고 허영섭 회장이 타계한지 1년여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허 초대회장의 일부 지분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창업주인 허 회장은 타계하기 구두로 본인 소유의 녹십자홀딩스 주식 56만여주 중 30만주와 녹십자 주식 26만여주 중 20만여주를 각각 재단에 기부하고 나머지 주식과 그 외 계열사 주식을 아내와 차남, 삼남에게만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장남인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은 자신을 제외한 가족에게 물려주도록 한 선친의 유언은 무효라며 어머니 정모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10월 “고 허 회장이 생전에 아들들에게 가급적 재산을 적게 남겨주고 특히 장남에게는 재산을 주지 않겠다고 밝혔던 사실 등을 종합하면 유언장은 고인의 진정한 뜻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유언
을 인정했다.
이후 유언대로 재산 일부가 복지재단에 기부되자 허 전 부사장은 복지재단을 상대로 다시 “아버지의 주식과 유산 등을 돌려달라”며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녹십자 관계자는 “타계한 선대회장의 지분을 놓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것은 맞다”며 “아직 결과나 나오지 않아 선대회장의 지분율에 대해 공식화 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장남인 허 전 부사장은 녹십자홀딩스의 지분 0.85%(36,794주)를 가지고 있지만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난 상태이며 차남인 허은철(지분율 1.09%)씨는 녹십자 부사장, 삼남 허용준 씨는 녹십자홀딩스 부사장(지분율 1.04%)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허 초대회장이 녹십자의 후계구도를 2세 승계보다는 동생 및 친인척 체제로 확립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장남이 아닌 차남과 삼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고 한 뜻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진행형인 지분 분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허일섭 회장 체제 지속 성장세=창업주 자녀들의 지분싸움에도 불구하고 녹십자는 허일섭 회장체제 출범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 2009년 매출 6432억원을 기록해 전년대비(5161억원) 24.63%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805억원으로 2008년 대비 64.76%나 증가해 흑자경영을 펼치고 있다.
특히 2010년은 3분기까지 매출누계 6394억4400만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53%나 증가했고 순이익은 1108억1100만원으로 195% 급증하는 등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녹십자 관계자는 “계절 독감백신의 국내 공급물량 확대와 수두백신의 해외수출 호조에 힘입어 백신제제와 해외수출 부문이 각각 53%, 38% 성장률을 보이며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지주회사인 녹십자홀딩스는 지난해 3분기 보고서 공시를 통해 누적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90% 증가한 792억원을 기록했다. 또 매출액(영업수익)은 892억,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은 787억원, 당기순이익은 683억원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액 155%, 법인세차감전순이익 266%, 당기순이익 344%가 증가한 것이다.
한편 녹십자홀딩스는 지난해 11월24일 259억3500만원 규모로 자회사인 녹십자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 회사는 이번 유증 참여로 25만5521주의 신주를 취득하며 총 지분은 51.92%(493만3853주)가 됐다.
회사 관계자는 “다변화를 내세운 녹십자 생명보험이 성장해 지주회사 녹십자홀딩스의 실적 상승을 이끌었다. 자회사들의 지속적인 성장과 맞물려 올해 녹십자홀딩스의 경영실적은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4개 분할 경영시스템으로 글로벌 기업 꿈꿔=녹십자 지주회사 경영시스템을 살펴보면 제약부문에서는 녹십자와 제약시설 전문 건설업체인 녹십자EM, 당뇨관리용품 최사 녹십자MS, 녹십자H&P, 녹십자JBP 등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헬스케어 부문은 녹십자생명보험과 녹십자헬스케어, 녹십자 건강증진센터로 구성돼 있다. 해외부문에는 Green Cross China(중국), GCAM(Green Cross Amarica)가 있다.
또 재단부문은 목암생명공학연구소와 녹십자의료재단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목암생명공학연구소는 민간연구기관으로는 최초로 교육과학기술부의 승인을 받아 지난 1984년 설립된 비영리 연구재단이다.
이 연구소의 연구성과로는 세계최초로 개발한 유행성출혈열백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수두백신, 국내 최초의 HIV진단시약 등이 있다.
녹십자의 녹색은 번영·풍요·평화를, 십자는 희생·봉사·사랑을 상징한다. 경기도 개풍 태생으로 개성상인 마지막 세대인 故허일섭 회장은 내실을 중시하고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했다. 그 덕에 제약회사 녹십자는 세계적인 생명공학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러한 변화를 거쳐 녹십자가 궁극적으로 설계하고 있는 미래비전은 ‘Total Healthcare Company’ 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녹십자는 이미 제대혈은행 사업을 시작했으며, 여러 나라의 ‘종합 헬스케어서비스’ 사업을 조사 분석해 우리나라에 맞는 제도와 방법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
또 녹십자는 지난해 미국 PBS 바이오테크(Biotech)와 ‘디스포저블 바이오리액터(Disposable Bioreactor, 세포배양기)’를 이용한 바이오의약품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녹십자는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있어 초기투자 비용 및 운용 비용절감 효과를 누리게 되어 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제품개발이 가능하게 됐다.
녹십자는 지난해 말 WHO 산하기관 PAHO(범美보건기구)와 올해 660만달러 규모의 수두백신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녹십자는 이번 계약분량의 수두백신을 올해 말까지 PAHO를 통해 남미로 공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