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없인 배 못 만들어" 생산현장마다 '人'구하기 전쟁 [늙어가는 제조업上]

노동집약적 제조업들은 이미 인력난이 현실화
조선 업종 미충원율은 전 산업 평균의 두 배 수준
철강업은 지방과 중소 업체 중심으로 인력난 심화
자동차 부품업은 생산관련 분야서 인력 부족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일할 사람이 없다. 떠나는 이들은 많지만 들어오는 일꾼은 없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사라지는 숙련공’의 시대를 지나 들어올 일손마저 모자란 위기 국면에 직면했다.
기계는 돌아도, 공장은 멈춘다. 생산현장은 갈수록 늙어가고 있다. 청년층은 ‘힘들고, 덜 주는’ 제조업을 외면한 지 오래다. 근로자 평균 연령이 40대를 넘긴 제조업 현장은 생산성 정체와 경쟁력 약화로 기반마저 흔들린다. 자동화와 스마트공장 도입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지만 정밀공정이나 품질관리처럼 사람의 손이 필요한 영역은 여전히 많다. 제조업 전반에 드리운 일자리 공백의 실체와 구조적 원인, 한국 제조업의 생존 조건을 짚어본다.

한국 제조업이 사람이 사라진 공장에서 생존을 걸고 버티고 있다. 특히 조선·철강·자동차 부품업계 등 노동집약적 산업은 인력난이 본격화되며 정상 가동조차 쉽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떠나는 사람은 늘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외국인 노동자와 고령자에 의존하는 구조가 심화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현장이 조선업이다. 1일 조선·해양 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발표한 ‘2024 조선·해양산업 인력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조선 업종 미충원율은 14.7%에 달했다. 전 산업 평균 8.3%의 두 배 수준이다.

조선업 종사자 수는 2014년 20만3400명에서 지난해 9만3038명으로 10년 새 반 토막 났다. 조선업은 고강도 야외 작업과 용접, 도장 등 고위험 공정 등으로 노동자 사이에서 기피대상이 된 지 오래다.

기업들이 제시한 미충원 원인도 명확하다. 근로조건과 임금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응답이 42.4%로 가장 많았고, 직종 자체의 기피(27.1%), 인력유치 경쟁(15.3%)이 뒤를 이었다.

빈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웠다. 현재 조선사들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조업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국내 조선소에서 외국인 비중은 10%대를 넘어섰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HD현대중공업 4500명 △HD현대삼호 3000명 △HD현대미포 2600명 등의 외국인 노동자가 투입됐다. “외국인 없으면 조업이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로봇으로 사람 손을 대신해 보려 해도 쉽지 않다. 조선산업은 비정형 중량물을 다루기 때문에 로봇 적용이 용이한 자동차나 전자와 성격이 다르다. 블록(선박을 건조하기 위해 일정한 크기로 분할해 제작하는 조립 부품)을 제작하는 단계부터는 사람 손이 반드시 닿아야 한다. 선박마다 설계가 달라 표준화되지 않은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도 자동화가 어려운 이유다.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한때 1만8000명대에 이르렀던 정규직 직원 수가 8000명대로 저점을 찍고 최근에야 1만 명대로 가까스로 회복했지만 여전히 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외국인 인력을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철강업계 역시 인력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300인 미만 중소 철강사나 지방 기업을 중심으로 구인난이 구조화되고 있다. 재료산업인적자원개발위원회의 ‘2024년 재료(철강·비철금속·세라믹) 산업 인력 현황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300인 미만 기업의 미충원 인원은 4000명 수준에 달했다.

자동차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중소기업 중심의 부품업계는 생산직 구직자 부재와 고령화라는 이중 고통을 겪고 있다. 자동차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의 ‘2024년 자동차산업 인력현황 보고서’ 결과 지난해 기준 자동차 부품산업 부족 인원은 3781명, 이 중 81.4%(3078명)가 생산관리 및 제조직에서 발생했다.

문제는 단지 사람을 못 뽑는 게 아니라 지원자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령화로 인해 은퇴하는 근로자가 늘어나며 신규 인력을 채용해야 하지만 지원자 자체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숙련 외국인을 합법 고용할 수 있도록 자동차 부품업에 ‘E-7-3 비자 시범사업’을 도입했다. 단순 기능직이 아닌 성형·용접·금형원 등 특정 기술을 요구하는 직종의 숙련 외국인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인력 공백이 단순한 경기 문제를 넘어 산업 존립의 위험 신호라고 보고 있다.

자동차 부품 업계 관계자는 “규모가 작거나 지방에 있는 부품 업체들은 인력난이 이미 현실화했다”면서 “신규 인력을 구하기 힘든 지방의 일부 업체들은 노사 합의를 통해 정년을 65세까지 늘리면서 사업체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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