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中 석화 수출 비중 13년간 12.5%p↓
수익성 악화에 공장 폐쇄ㆍ구조조정
호두까기 기계를 뜻하는 ‘넛 크래커’는 선진국에 비해서는 기술과 품질 경쟁에,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는 가격 경쟁에 밀리는 1990년대 한국의 수출 환경을 빗대는 말에서 유래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차이나 크래커’가 우리 경제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형국이다. 중국이 양적 중심의 제조 대국에서 제조 강국으로 진화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한국 제조업을 위협하고 있다.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던 철강ㆍ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은 중국의 저가 공세로 장기 불황에 빠졌다. 중국이 내수 침체로 쌓인 물량을 헐값에 해외로 밀어내면서 세계 시장은 물론, 국내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최근 중국산 스테인리스스틸 후판에 잠정 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예비조사 결과 국내 산업에 피해가 존재한다고 판단,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 21.62%의 관세 부과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의하기로 했다.
무역위는 또 지난해 7월 현대제철이 신청한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진행 중이다. 현대제철은 같은 해 12월 중국과 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해서도 반덤핑 제소를 했다.
철강 산업은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에 흔들리는 대표적 산업이다.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저가 제품이 늘자 국산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수익성이 악화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입된 철강재는 877만 톤(t)으로, 2017년(1153만t)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석유화학 산업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중국 정부는 2020년쯤부터 석유화학 자급률을 높이겠다며 대규모 증설에 돌입했다. 그 결과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8년 2565만t에서 2023년 5174만t까지 2배 이상 확대됐고, 2022년(4571만t)에는 전 세계 생산국 1위를 거머쥐었다.
우량 고객이었던 중국이 자급자족에 나서자 석유화학 제품의 대중 수출 비중은 2010년 48.8%에서 2023년 36.3%까지 쪼그라들었다. 중국발 과잉 공급은 전 세계로 번져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을 끌어내렸다. 석유화학 기업의 수익성 지표로 활용되는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금액)는 2022년 이후 손익분기점인 t당 200~250달러를 밑돌고 있다.
제품을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이어지자 기업들은 일단 공장 문을 닫고 생존전략 모색에 나섰다. 포스코는 지난해 7월 포항제철소의 1제강공장 폐쇄에 이어 지난해 11월 1선재공장도 문을 닫았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하고 생산량을 조절하기로 했다.
중국의 주력 시장에서 손을 떼는 경우도 있다. 롯데케미칼은 2023년 중국 내 범용 제품 생산 공장을 정리했고, 말레이시아 법인 롯데케미칼타이탄(LC타이탄) 매각 검토를 포함해 해외 사업장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여수 나프타분해설비(NCC) 2공장의 지분 일부를 중동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포스코그룹도 저수익 사업 55개와 비핵심 자산 70개를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할 방침인데, 대표적으로 스테인리스스틸을 생산하는 중국 포스코장가항불수강유한공사를 매각하기로 했다.
태양광 업계의 경우 한국 시장에서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범람한 탓이다. 국내 태양광 제조업체 수는 2017년 46개에서 2022년 23개로 반 토막 났다. 한화큐셀과 OCI홀딩스는 생산 거점을 옮겨 북미 시장에 주력하고 있지만, 중국발 과잉 공급을 피하긴 어려웠다. 미국은 부랴부랴 관세 장벽을 쌓았지만 수익성 개선은 요원하다.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 둔화 추세가 지속되면서 이 같은 구조적 문제가 좀처럼 해소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혜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 저가 수입품은 경기 악화로 원가 절감이 절실한 한국 제조업을 공략하고 있다”며 “중국과 차별화된 사업에 보다 집중하는 한편, 선제적으로 차세대 신기술 확보를 통해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