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피의자 신속구제…기소유예→혐의없음 늘어날 듯
기소편의주의 지적 여전…“통제‧감독할 시스템 마련해야”
대구에 사는 대학생 A 씨는 2021년 10월 연구 과제를 하기 위해 노트북으로 한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사용했다. 그러자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프로그램을 무단 복제했다며 A 씨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했고,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교수로부터 받은 프로그램을 사용했을 뿐 저작권 침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담당 교수도 A 씨와 같은 취지로 설명했지만, 대구지검은 사건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억울한 A 씨는 헌법재판소에 기소유예 취소 처분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의 결정이 나오기 전인 5월 말, 대구지검은 사건을 다시 들여다봤다. 정식 심판에 회부되자 기소유예 처분의 적법 여부를 다시 점검한 것이다. 이후 대구지검은 6월 7일 A 씨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을 ‘혐의없음’으로 변경했다.
절도 피의자로 몰려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헌법소원을 청구한 B 씨 사연도 비슷하다. B 씨는 지난해 말 서울 한 주점에서 케이크가 든 비닐봉지를 가지고 가 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서부지검은 B 씨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B 씨는 억울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자 이 사건을 다시 살펴본 서부지검은 애초 B 씨의 비닐봉지와 케이크가 담긴 봉지가 나란히 있었고, 별 의심 없이 가져간 점 등 ‘내 물건인 줄 알았다’는 B 씨 주장을 받아들여 4월 25일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 같은 검찰의 ‘처분 변경’ 방침은 올해 4월부터 본격 적용됐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4월 17일 일선 검찰청에 ‘인권 보호를 위한 기소유예 처분 점검’ 공문을 보냈다. 억울한 피의자를 신속하게 구제한다는 취지다.
검찰 관계자는 “헌재 심판이 열려서 결정되는 만큼 시간이 걸리니 그 전에 해당 검찰청에서 사건을 재검토하는 절차가 생긴 것”이라며 “혐의없음 처분이 된다면 신속하게 권리구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헌법소원 접수를 받아 심판에 부치면 대검으로 관련 자료를 요청한다. 대검은 기소유예 처분한 해당 청에 공문을 보내는데, 인권보호관이 헌법소원 청구서 기록을 보고 10일 내 원처분(기소유예) 변경, 재수사 등 의견을 제시하는 식이다.
검찰이 향후 자체적인 재검토를 통한 기소유예 처분 변경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전히 검찰의 재량권이 두드러지는 만큼,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미지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과 김면기 경찰대학 법학과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기소유예처분 취소 결정에 대한 실증적 연구’에서 “충분한 확인 없이 기소유예 처분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짚었다.
이어 “기소유예 처분에 대한 통제가 적절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감독·이의제기를 위한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며 “법원의 동의를 거치거나 소명할 권리를 보장하는 등 사전적 통제수단에 관한 논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창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창덕)는 “헌재에서 기소유예 취소처분 심판 사건이 제일 많다”며 “검사도 실수할 수 있는데, 여러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없다. 검사의 기소편의주의를 견제하고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사의 잘못된 처분이 지속할 경우 인사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검사가 기소한 사건에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면, 수사 과정에 과오가 있었는지를 평가해 인사에 반영하는 무죄평정제도를 확대 적용하자는 것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의 기소권 남용으로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지 말자는 게 무죄평정제도의 취지”라며 “이를 기소유예 처분에도 적용하는 등 책임에 따른 노력을 하도록 일종의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