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국제경제부 부장
중국도 비슷한 고민을 했습니다. 컴퓨터를 ‘전뇌(電腦)’로 바꿔 부르고, 굴착기를 일컬어 ‘대력(大力)’이라고 부르던 그들도 이제 포기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 문물을 거침없이 흡수하는 젊은 세대와 그렇지 못한 기성세대와의 소통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외국어 또는 외국상표가 우리에게 와 하나의 ‘외래어’로 고착되는 일은 그동안에도 숱했습니다.
1980년대 등장한 이른바 ‘봉고차’도 사례입니다. 당시 기아산업이 일본 마쓰다의 원박스카 ‘봉고(Bongo)’를 가져오면서 이름까지 따라왔습니다.
이후 꽤 오랫동안 ‘다인승 승합차=봉고’라는 등식이 성립되기도 했지요.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선보인 네모난 소형 승합차를 부를 이름도 마땅치 않았으니까요.
이제 봉고의 기억이 희미해졌습니다. 새로운 이름의 후속 모델이 속속 등장했고 기아산업이 독점했던 다인승 승합차 시장도 깨졌기 때문이지요. 봉고를 기억하는 세대가 하나둘 사라지는 것도 배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하자는 움직임은 새 문물 유입속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자연스레 그들이 지닌 원래 고유명사를 우리가 외래어로 받아들이는 셈이지요.
이런 가운데 유난히 일본어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누군가는 “일본어는 안 된다면서 영어는 왜 이리 남발하느냐”고 묻습니다. 미국은 맹목적인 우방이고 일본은 강점기를 거친, 가깝고도 먼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나마 당위성을 지닙니다.
굳이 나열할 이유는 없지만, 우리 주변에도 일본 외래어가 많습니다. 이런 외래어야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꿔쓸 수 있는 일본식 표현은 차고 넘칩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전미자동차노조’입니다. 미국 자동차 노동자 연합인 ‘UAW’를 지칭하는 단어인데요. 그냥 ‘미국자동차노조’라고 써도 될 일을, 굳이 ‘전미(全美)’라는 접두어를 붙입니다.
누가 시작했는지 찾아봤습니다. 역시 그 끝에 일본 신문기사가 있었습니다. 전일본공수와 전일본체육연맹 등 기업과 단체 이름에 꼭 전체를 아우르는 ‘전(全)’이 접두어로 붙습니다.
일본은 이런 표현을 왜 쓰는 것일까도 찾아봤습니다. 나라 전체가 1만4000개가 넘는 섬으로 나뉘다 보니 지역과 부족의 경계가 뚜렷했습니다. 이들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 쓰였던 표현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요.
기자 역시 그동안 겁 없이 ‘전미자동차노조’라는 단어를 써왔음을 고백합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여야 한다’는 허울 좋은 핑계를 쥐고 있었음도 고백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를 바꿔쓰는 게 맞습니다. 새 문물과 함께 따라온 외래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말로 충분히 바꿔쓸 수 있는 표현은 응당 우리 것을 찾는 게 맞습니다. 원래 역사 변화는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하는 것이거든요.
굳이 일본 신문기사를 좇아 ‘전미자동차노조’로 써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미국자동차노조’라고 써도 충분합니다.
jun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