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사상·이념도 아닌데…'비혼주의'가 무슨 말?

입력 2023-11-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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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운영위원회 및 인구정책기획단 회의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저출산 문제의 핵심을 꼽으라면 단연 비혼·만혼이다. 문제는 비혼·만혼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먼저 비혼이란 말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자의든 타의든 결혼하지 않은 상태가 비혼이다. 추세적으로 비혼 인구가 는다면 이는 비혼화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일종의 현상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비혼은 현상이 아닌 사상·이념으로 다뤄진다. 2007년에는 처음으로 언론에서 비혼주의란 말이 등장했다. 일부에선 비혼주의가 주체적 삶, 특별한 삶으로 포장된다. 본인이 비혼주의임을 선언하는 연예인 등 유명인도 많다. 이제는 비혼이 ‘자발적 미혼’으로, 이런 비혼을 선택하는 생각은 ‘비혼주의’로 불린다.

행복 추구는 헌법(제10조)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다. 결혼하든 안 하든 행복하기 위한 개인의 결정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비혼의 사상·이념화는 문제가 다르다. 개인의 선택은 다른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그 선택이 사상·이념화하면 전염성이 생긴다. 비혼주의는 이미 성 갈등과 맞물려 혐오성이 짙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커뮤니티에서 필혼주의자들은 ‘여미새(여자에 미친 XX)’, ‘남미새(남자에 미친 XX)’로 매도된다. 극단적 비혼주의자들에게 결혼은 ‘혼자 살 능력 없는 이들의 비주체적 공생’이다.

미디어도 여기에 편승하고 있다. 유명인에게 비혼주의에 대한 견해를 묻고, 비혼의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방송이 쏟아진다. 결혼·육아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이렇게 비혼주의가 확산하면 비혼주의에 대한 공격도 늘어난다. 그 결과로 두 ‘사상 아닌 사상’이 충돌하면 불특정 다수는 ‘무엇이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 또 노선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런 비주체적 결정이 독신 또는 만혼으로 이어졌을 때, 특히 그 결과가 불행일 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비혼주의를 설파하던 이들은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으로 방어한다.

비혼주의의 바탕에는 필혼주의에 대한 반감이 있다. 최근까지 ‘결혼 언제 하냐’는 질문은 무례가 아닌 관심으로 여겨졌다. 개인의 행복권은 철저히 무시됐다. 결혼 적령기를 지난 미혼자는 ‘하자 있는 사람’으로 취급됐다. 그런데, 통계청에 따르면 30년 이상 혼인생활을 유지하다가 이혼한 ‘황혼 이혼’은 2021년 기준 전체 이혼 건수의 17.6%를 차지했다. 10년 전인 2011년과 비교하면 10.6%포인트(P) 확대됐다. 젊은 세대는 이런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과거나 지금이나 개인의 행복이 무시되는 상황은 같다. 강요되는 게 비혼이냐, 필혼이냐의 차이만 있다.

결혼 결정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사회적으로 특정 선택이 강요되면 부작용만 생긴다. 정부도 비혼이냐, 필혼이냐의 논쟁에서 발을 뺄 필요가 있다. 비혼을 고령화 같은 ‘현상’으로 규정하고, 그 현상에 대응하면 된다. 결혼의 진입장벽과 기회비용을 낮춰 결혼이 ‘합리적 결정’으로 인식되도록 하고, 극단적으로 혐오·편견을 조장하는 미디어를 제재하는 역할 정도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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