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저물가’ 스위스는 왜 금리를 동결했나

입력 2023-10-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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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물가지만 언제든 반등 여지
원자재·유가불안에 ‘완화책’ 주저
인플레 학습효과로 ‘신중론’ 유지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 6월 3.0%까지 내려가면서 연준의 물가목표치인 2%로의 회귀가 머지않았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지난 9월에는 재차 반등해 3.7%를 기록했다. 지난해 배럴당 135달러로 정점을 기록한 국제유가가 빠른 속도로 하락, 올해 중반 65달러까지 떨어진 뒤 꾸준히 반등해 배럴당 80~90달러 수준을 이어가자 에너지 부문에서의 물가상승이 재차 강해졌기 때문이다.

2022년 6월 9.1%를 정점으로 2023년 6월 3.0%까지 소비자물가지수가 12개월 동안 6.1%포인트의 빠른 안정세를 보였다. 그런 만큼 조기 인플레이션 제압에 대한 기대가 컸던 금융 시장의 실망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인플레이션 제압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과의 장기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높은 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하게 되는, 이른바 ‘Higher for Longer’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결국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의 소비자물가지수 반등을 보면서 고물가 고금리 국면이 예상보다 오랜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2% 물가 목표 수준으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하락하면 연준은 지금 시장을 압박하고 있는 긴축 스탠스를 풀게 될까?

전 세계 국가 중 소비자물가지수가 2%를 하회한 국가가 있다. 바로 스위스인데, 스위스의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대 후반을 기록, 다들 주목하고 있는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를 하회했다.

그럼 스위스중앙은행(SNB)은 바로 기준금리를 인하했을까? 예상과는 달리 지난 달 SNB는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연말까지 필요시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물가 목표만 충족되면 바로 긴축 스탠스를 풀고 과거의 완화적 금융환경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와는 사뭇 달라보인다.

스위스중앙은행은 지금의 인플레이션 안정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음을 우려한다. 당장은 2%를 하회하는 물가상승률을 나타내고 있지만, 최근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 및 각종 농산물 가격의 상승, 과거와 달라진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이 겹치게 되면 다시금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를 상회할 수 있다. 과거 연준은 디플레이션이 심각했을 때 소비자물가지수가 2%를 넘더라도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음을 근거로 기준금리 인상을 미루었었다.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이기에 소비자물가지수가 2%를 하회하더라도 이를 일시적인 물가안정으로 보고 경계를 늦추지 않을 수 있는데, 스위스 중앙은행이 그 선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학창 시절 수십 번 되새기면서 들었던 ‘꺼진 불(인플레이션)도 다시 보자’라는 교훈을 그대로 실천한다고 볼 수 있다.

스위스중앙은행 특유의 보수적이고 신중한 스탠스일 수 있기 때문이기에, 다른 국가의 중앙은행도 비슷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여 년간의 흐름을 보면 워낙 세계 경제 성장이 취약하기에 약간의 충격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어 각국 중앙은행들은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그리고 강력한 통화 완화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와 비교해서 지금의 글로벌 성장세가 탄탄하다고 하기는 어려운 바, 인플레이션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면 언제든 공격적 완화의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전 세계는 40년 만에 가장 강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으며,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의 10년 역시 인플레이션이 사라졌던 시기에 포함되는데,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었기에 중앙은행의 강력한 통화 완화 정책 대응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인플레이션은 부활했고 실제 사람들은 그런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어느 새 3년 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은 시장 참여자들은 언제쯤 미국의 물가가 2%로 되돌려지는지, 그리고 그 시기를 전후해서 지금의 고통스러운 긴축이 끝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2%에 가깝게 물가상승률이 안정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과감한 통화 완화가 재현되기보다는 당장 겪어왔던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에 보다 신중한 행보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취하고 있는 현재의 스탠스는 물가가 안정된 이후 미국을 비롯한 다른 중앙은행들이 만나게 될 미래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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