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와 종사자 소명 의식이
방송경쟁력 키우고 권위 얻게해
최근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들의 난맥상을 보면서, 우리는 왜 BBC처럼 국민의 신뢰를 받고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공영방송이 없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소망과 기대는 BBC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공영방송 논쟁에서도 BBC는 마치 ‘금단의 방송’처럼 인식돼 왔다.
한국에 공영방송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3년 문화공보부 산하에 있던 국영방송을 한국방송공사로 독립시키면서부터다. 서슬퍼런 유신통치가 시작된 시기라는 것이 공교롭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 국민에게 공영방송은 아주 낯선 명칭이었을 뿐이었다. 공영방송이란 용어가 일반인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것은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 때문이다.
큰 인기를 누렸던 상업방송 TBC를 강제로 흡수·통합해 지금의 KBS 1, 2TV가 됐다. 또 KBS는 MBC 지분까지 갖게돼 완전한 독점체제를 구축했다. 지금의 공영방송 체제는 정당성이 약했던 제5공화국이 언론 통제를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즉, 강력한 언론 통제 체제를 위장하기 위해 공익성을 표방하는 공영방송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다른 나라들은 정보화라는 거대 흐름 속에 작은 정부와 시장 경쟁을 중시하는 ‘탈(脫)규제’와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미디어 영역 또한 케이블TV 같은 신규 미디어들이 등장하면서 공영방송 입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1987년 프랑스 공영방송 TF1 민영화가 대표적 사례다. 상업방송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통적인 공공독점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1980년대 중반 이후 공영방송 존립 근거와 명분을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논리들이 개발됐다. 이른바 범람하는 상업방송에 대응하기 위해 공익에 충실한 공영방송이 필요하다는 ‘대안론(alternative theory)’이다. 이런 논리들을 근거로 유럽의 공영방송들은 30년 이상 버텨올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유럽의 대표적 언론학자인 데니스 맥퀘일은 ‘폭풍 전의 고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등장한 공영방송 논리들은 KBS와 MBC 같은 공영방송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차용됐다. 정치적 통제를 위해 만든 공영방송 제도를 우리와 전혀 다른 역사적·정치적 배경에서 나온 논리들로 포장한 것이다. 이것이 제도와 이념이 따로 노는 기형적 공영방송의 근원이 됐다. 여기에 공적 책무에 걸맞지 않는 광고재원까지 가세해, 제도와 이념 그리고 재원이 각각 따로 노는 마치 ‘갓 쓰고 양복 입고 킥보드 타는’ 우스꽝스러운 공영방송이 돼버렸다.
잘못 단추 끼워진 공영방송 체제는 이후 언론노조가 장악한 공영방송 체제에서도 그대로 유지 아니 더욱 견고하게 고착됐다. 공익성이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가지고, 자신들의 독점구조를 견고하게 지키는 방패막이로 활용한 것이다. 특히 2000년 이후 인터넷 미디어의 급성장으로 급속히 약화된 시장 입지를 고수하기 위해 법·제도적 보호막이 필요했고, 그것은 지금의 정치권력과 결탁된 후견 체제를 형성했다.
새로 지명된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영국 BBC처럼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공영방송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극히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특히 공영방송 외연을 글로벌 무대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는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제도와 이념 그리고 재원이 따로 노는 공영방송 체제로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BBC의 글로벌 경쟁력은 공정하고 정확한 뉴스와 고품질 다큐멘터리에 있다. 그 경쟁력은 자국 내에 형성된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슬리퍼 끌고 뒤통수에다 고함치는 취재기자나 정치 선동 같은 편파적 시사 프로그램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안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도 새는 정도가 아니라 집안 망신시킬 것이 분명하다.
공영방송 경쟁력은 독립성을 존중하는 성숙된 정치문화와 종사자들의 소명의식에서 나온다, BBC가 우리 공영방송보다 우수한 것은 제도나 이념이 아니라 바로 그런 의식과 문화다. 공영방송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하지만 필요하다는 인식도 여전히 적지 않다. 공영방송이 살길은 바로 그런 인식이 신뢰로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