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의 마이크 갤러거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이 23일(현지시간) 대중국 보복을 촉구하는 성명서에서 한국을 겨냥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대체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미 의회 지도급 인사가 한국을 공식적으로 지목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요구는 우리의 전략적 자산인 K-반도체가 미·중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놓인 긴박한 현실을 가감 없이 말해준다.
미·중 갈등은 칩워(Chip War)로 불릴 만큼 격화일로다. 주요 선진 7개국(G7) 정상회의 폐막에 맞춰 중국은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재에 들어갔다. 사이버 보안 위험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제품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한 것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3년 전부터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줄이면서 자국산으로 대체했고, 부족한 부분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제품으로 보완했다. 그런데도 새삼스레 마이크론 퇴출을 공표한 것은 자못 시사적이다. 중국은 반격할 의사가 있고 힘이 있고 길도 있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알린 것이 아닌가. 미국 또한 중국 포위 전략을 가차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칩워’는 단순히 반도체 알력에 그칠 사안이 아니다. 앞으로 두 나라의 미래 국력을 좌우할 첨단기술 전반으로 전선이 넓어지고 충돌 수위는 높아질 개연성이 많다. 양국 모두 순순히 물러설 리 없고, 한국 고충을 살펴줄 리도 없다. 우리 또한 이번 ‘전쟁’을 제로섬 게임으로 알고 엄중히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낙관도, 비관도 금물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측은 어제 보도진 질의에 “중국을 선택하면 제조를 못 하고 미국을 선택하면 판매를 못 하게 된다”면서 “묘안이 없으니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일단 쌍방향으로 외교통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되 전체 국면을 읽고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훨씬 다급하고 근본적인 과제도 있다. 차제에 독보적 기술과 생산 능력을 확보해 K-반도체 입지를 획기적으로 넓히는 과제다. 다른 그 무엇보다 중국 등 후발주자나 경쟁국들이 따라올 엄두도 낼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 투자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에만 떠맡길 일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도 규제, 세제 등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는 암적 요소들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조속히 제거해야 한다. 그러는 대신 타국의 온정과 배려 따위나 바라면서 시간만 낭비한다면 K-반도체의 미래는 캄캄해질 것이다. 국가 미래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