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이 올해로 설립 20년을 맞았다. 양평원은 2001년 여성부(현 여성가족부)가 처음 생겨나면서 여성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 공무원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문을 열었다. 2003년 4명의 단출한 인력이 투입돼 시작한 양평원은 연간 100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여가부 주요 산하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성인지 감수성 제고와 폭력 예방에 앞장서온 장명선 양평원장을 14일 서울 은평구 양평원 원장실에서 만나 지난 20년간의 조직 성과를 물었다. 2021년 여름 취임해 임기 3분의2 가량을 수행한 장 원장은 “4명으로 시작한 양평원이 지금은 120명이 넘는 인원이 일하는 조직이 됐다”면서 “성평등 정책을 실현하는 데 양평원이 꽤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고 의미를 짚었다.
지난 20년 동안 양평원 강의를 들은 공공부문 종사자는 150만 명을 웃돈다. 성평등, 폭력 예방 등이 핵심 주제다.
장 원장은 “국방부, 경찰청 등 기관의 특성에 따라 교육 콘텐츠가 다 달라진다”면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담당자와 사전에 기획회의를 거쳐 기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교육 내용, 시간 등을 결정한다”고 교육 과정을 설명했다.
지난 3월 육군사관학교 생도를 대상으로 진행한 교육에서는 신승은 감독의 단편영화 ‘프론트맨’(2019)의 내용을 일부 활용하기도 했다. 공정한 경쟁이나 선발 과정 없이 남학생을 핵심 연주자인 ‘프론트맨’에 배정하는 교사의 관행적인 행동을 소재로 다뤘다.
성평등을 바라보는 젊은 감독의 시선을 빌려 보다 효과적인 강의 콘텐츠로 활용한다는 취지다. 양평원 관계자는 해당 교육에서 “’유리천장’이라는 용어가 남학생들 입에서 나왔을 정도로 반향이 있었다”고 전했다.
양평원은 ‘프론트맨’처럼 교육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단편영화의 제작 활성화를 위해 5년째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한 ‘필름X젠더’ 부문 제작지원금을 수여하고 있다.
폭력 예방 교육 전문 강사를 양성, 위촉하는 것 또한 양평원의 주요 임무다. 현재 960명의 전문 강사가 양평원이 발급한 전문강사 자격증을 부여받아 활동 중이다. 이들은 각종 보수교육을 거쳐 1년 단위로 재위촉된다.
장 원장은 “150시간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만큼 쉬운 과정은 아니다”라면서도 “현직 변호사가 자격증을 따서 활동하는 경우가 꽤 많다. 법을 잘 아는 이들이 전문강사로 나설 경우 기업의 교육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고, 전문성을 쌓으면서 관련 사건도 맡게 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전문강사의 성비가 9대 1로 남성 수가 적은 건 아쉬운 지점이다. 다만 “올해 전문 강사 교육을 받는 175명 중 32명(18%)이 남성”이라면서 “퇴직한 군인이나 경찰 등 몸담았던 조직의 성격을 잘 아는 남성들도 많이 지원한다”고 부연했다.
앞으로는 교육대상자의 역량이나 성평등 인식 수준에 따라 ‘기초 – 심화 – 전문’ 등으로 차별화된 단계별 교육을 제공하는 방향도 계획 중이다. “한 시간 안에 성희롱 교육을 모두 하기엔 사실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생애 동안 굳어진 성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단시간 안에 소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장 원장은 “앞으로는 ‘저번에 이 교육을 들었으니 이번에는 그다음 과정을 들어보면 좋을 것’이라는 식의 안내까지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려 한다’고 설명했다.
본질적으로는 이 모든 교육이 '존중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괄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건넸다. ‘성평등 교육’이라는 표현이 품고 있는 다소 교과서적인 인상을 넘어, 상대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배려와 존중’ 차원의 교육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다.
장 원장은 "이제는 성별, 젠더로만 관련 교육을 하는 건 쉽지 않다”면서 “우리나라도 이미 굉장히 다문화 돼 있는 만큼 인권을 근본으로 하는 ‘존중교육’ 안에서 인종, 민주주의, 성, 폭력과 동의 문제 등을 두루 다루면 거부감이 덜 생기고 받아들이기도 쉬울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