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누명’ 납북어부들 “재심 50년간 기다렸는데…무책임한 검사 때문에 연기돼”

입력 2023-04-1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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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안납북귀환어부 생존자 및 유가족들이 12일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춘천지검의 직무유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수진 기자 abc123@)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사건 피해자들이 “검찰이 51년 만에 열린 재심 공판기일에서 직무를 유기했다”고 호소했다.

동해안납북귀환어부 피해자모임 30여 명은 12일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춘천지검의 직무유기를 규탄하며 재발방지대책을 대검찰청에 촉구했다.

이들은 1970년께 어린 나이에 조업을 하다가 북한쾌속정에 납북돼 약 1년간 북한에 억류된 뒤 귀환했다. 귀환한 피해자들은 간첩으로 몰려 불법 수사를 받고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옥살이를 했다.

이후 불법 수사 정황이 세상에 드러나며 법원은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 춘천지방법원은 지난해 11월 7일 이 사건에 대해 재심 결정을 내리고 올해 31일을 특별기일로 지정했다. 일부 피해자들이 올해 1월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춘천지검도 무죄를 구형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춘천지검 공판검사가 ‘아직 검찰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재판부에 연기를 요청하는 바람에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3월 31일 춘천지법에서 51년 만에 재심공판이 열렸지만 고작 10분이라는 시간 만에 끝나버렸다”라며 “납북귀환어부라는 이유로 갖은 고문과 불법 수사로 처벌받고 ‘전과자’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낸 피해자들은 이날 진실 규명이라는 기대를 품고 법원을 찾았지만 검사의 준비부족으로 진실을 다퉈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7일 재심개시결정이 내려졌고 올해 3월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 무려 4개월이라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 공판기일 2개월 전부터 기일통지도 전달된 상태였다”면서 “그간 검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입장도 정리하지 못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제2승해호 선원으로 납북귀환어부로 처벌받은 김영수 씨는 “50년 전 아버지 생일상을 차려드리기 위해 돈을 벌고자 어린 나이에 오징어를 잡으러 갔는데 뜻하지 않게 납북돼 강제로 1년간 억류됐다. 이후 돌아왔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호통치고 윽박지르고 때리는 경찰관들이었다”라며 “수사관들로부터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고 물고문, 고춧가루고문, 전기고문을 수없이 당했다”고 호소했다.

김 씨는 “국가는 우리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각한다면 국가가 먼저 앞장서서 이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며 “춘천지방법원에서 담당검사의 무책임한 언행을 보시라. 사건의 자료가 준비가 안 돼 재판을 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가슴에 맺힌 이 고통을 풀어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전국 법원에서 납북귀환어부관련 재심 재판이 열릴 텐데 검찰이 준비가 부족하다며 기일 연장하면 50년 기다린 납북어부들 두 번 울리는 것”이라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검찰청에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사건 관련자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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