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호봉제 등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한다.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임금이 오르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사업체는 희망퇴직·정리해고 등으로 고령자를 내쫓거나 청년층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방향에 대해선 이견이 적지만,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첫째, 연공급이 필요한 기관·기업과 불필요한 기관·기업을 구분해야 한다. 연구·교육 등 전문 분야와 지식기반 분야 종사자들은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경험·지식이 축적돼 생산성도 오른다. 이런 분야에서 호봉제는 종사자들이 다른 고려 없이 지식 재생산에 집중할 환경을 제공한다. 업종·직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 호봉제 폐지를 추진하면 역효과가 날 것이다.
둘째, 성과 평가체계를 먼저 확립해야 한다. 여전히 일부 공공부문에선 직무·성과급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장기근속자에게 높은 평가등급을 몰아주는 관행이 남아있다. 이는 승진에도 반영된다. 지방자치단체나 민간기업에선 평가등급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라인’이다. 직무·성과급제 도입이 효과를 내려면, 반드시 공정한 평가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은 법보다 관행을 개선하는 문제다. 따라서 하루아침에 성과를 보기 어렵다. 국정과제라는 이유로 현 정권 임기 내에 끝내겠단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오히려 시급한 문제는 임금 구성항목 단순화다. 현재 민간기업들의 임금체계는 그야말로 누더기다. 상황이 이렇게 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30여 년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3저(저환율·저유가·저금리)로 유례없는 경기 호황이 이어지면서 수년간 임금 인상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1990년대 초부터 정부가 임금 인상 자제를 압박하자 노사는 기본급 인상률을 낮추되 수당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관행이 이어져 일부 기업에선 수당의 종류만 100개가 넘는 상황이 됐다. 경제 호황기엔 노사 모두 좋았다. 기업은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을 줄여 법정수당을 아꼈고, 근로자들은 실수령액이 늘어 주머니를 채웠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성장세가 꺾이고 임금 인상률이 낮아지자 노동조합들은 법정수당으로 눈을 돌렸다. 곳곳에서 통상임금 소송이 빗발쳤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의 기준임금이다. 쟁점은 기본급을 제외한 수당이 어디까지 통상임금에 포함되느냐였다. 2013년 대법원이 통상임금에 대한 나름의 기준선을 내놨지만, 통상임금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제는 임금 구성항목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임금에 해석의 여지가 있으면 불필요한 갈등만 발생한다. 일각에선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제외한 임금총액을 구성항목과 무관하게 통상임금·평균임금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통상임금·평균임금을 둘러싼 노사의 해석차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수당 쪼개기도 의미가 없어진다. 현재의 임금은 너무 복잡하다. 현장에선 ‘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도 임금을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더불어 최저임금 인상을 전제로 주휴수당 폐지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이 턱없이 낮은 상황이면 몰라도, 지금은 현장의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 합법적인 주휴수당 미지급을 목적으로 초단시간 근로자가 양산되는 문제도 있다. 방법은 다양하다. 연간 최저임금 인상률에 2%포인트(p)씩 가산하고, 8년 뒤 폐지하는 방식이 일례다. 중요한 건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