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커지는 5월 러시아 디폴트 가능성…국내 증시 영향은?

입력 2022-04-15 19:46수정 2022-04-2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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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달러채 상환 불허 제재에 디폴트 가능성↑
무디스 "원리금 루블화 지급 디폴트 간주"
국영기업 러시아철도 회사채 디폴트 판정받아
98년 러시아 디폴트 당시 세계 경제 4.0%→2.6%
"전염 리스크 본격화 가능성 아직 낮아…장기화 시 확산될수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월 22일 크렘린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모스크바/AP뉴시스

최근 고비를 넘겼던 러시아 디폴트 사태가 다시 5월 재개될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달 초부터 미 은행을 통한 달러채 상환 결제를 막기로 하면서 빚을 갚기 위한 유예기간이 한달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러시아는 국고에 남은 달러를 소진하지 않으면 채무 불이행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벼랑에 몰리게 됐습니다.

‘디폴트(Default)’는 국가가 외국에서 빌린 빚을 제때 갚지 못해 부도가 난 상황을 말합니다. 국가 단위의 ‘채무불이행’인 셈이죠. 국가가 대규모 자금이 필요할땐 보통 채권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파는데 이때 채권의 이자나 원금을 상환 기간 내에 갚지 못하면 디폴트가 됩니다. 일시적으로 상환을 미루는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moratorium)’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아직 디폴트로 인한 리스크 확산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그러나 글로벌 긴축 기조에 이어 여전한 인플레이션 등 불안요소가 산재한 만큼 불안감을 쉽게 떨치긴 어렵습니다. 러시아가 디폴트를 맞게 되면 글로벌 경제와 국내 증시엔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러, 4월 상환 실패…5월 디폴트 가능성 커져

(출처=케이프투자증권)

최근 러시아의 디폴트가 임박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3월 달러화 국채 이자를 지급하면서 고비를 한차례 넘겼지만 이달 초 미국이 자국 은행의 예치 자금을 이용한 상환을 허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재차 디폴트 우려가 커졌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4일 만기 국채의 72%(14억5000만 달러)를 사전에 루블화로 재매입하면서 상환해야 하는 달러 부채가 5억5000만 달러로 줄었지만 미국의 제재로 2042년 만기 채권 이자 8000만 달러를 포함해 총 6억4000만 달러를 지급하는 데 실패한 상황입니다. 이에 30일의 상환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5월 초 디폴트 선고 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입니다.

러시아 정부는 일단 루블화로 지급한 후 나중에 미 달러화로 환전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예기간 내에 달러화가 상환되더라도 여전히 연내 지급해야하는 유로본드 원리금도 19억 달러에 이르는 상황입니다. 러시아 기업들도 올해 158억 달러를 추가로 내야하지만 이미 제때 지급하지 못한 사례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신용평가사들도 잇따라 경고에 나섰습니다. 무디스는 14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달러표시 채권 원리금을 루블화로 지급한 데 대해 디폴트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원리금을 루블화로 지급한 것은 당초 달러화로 지급키로 한 계약조건과 다르다고 본 것입니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은 러시아의 외화표시 채권 신용등급을 ‘SD등급(선택적디폴트·Selective Default)’으로 낮췄습니다. SD 등급은 디폴트 바로 전 단계로 여겨집니다.

지난 11일(현지시간)엔 러시아의 국영기업 러시아철도가 신용파생상품결정위원회(CDDC)로부터 회사채 디폴트 판정을 받았습니다. 러시아 철도공사는 지난달 14일 만기가 된 스위스 프랑 채권이자를 유예기간(10일)이 이후에도 상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 디폴트 4번 중 3번 세계 경제 부진

(출처=국제금융센터)

러시아가 디폴트 선고를 받게 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요? 과거 사례를 보면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 디폴트 발생 직후 세계 경제성장률은 4차례 중 3차례 전년 대비 부진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디폴트 직전 해 대비 발생한 해의 세계 성장률은 2017년 베네수엘라(3.3%→3.8%) 외에 1998년 러시아(4.0%→2.6%), 2001년 아르헨티나(4.8%→2.4%), 2012년 그리스(4.3%→3.5%) 사례에서 떨어졌습니다.

과거 디폴트 사례들의 경우 외채급증, 정치불안, 경제위기가 공통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외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선 디폴트가 2차 충격으로 금융불안을 야기 하기도 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앞서 세계 경제성장률이 부진했던 3차례의 디폴트는 국내 경제 불안 요인과 국외 경제 위기가 동시에 맞물렸습니다. 1998년 러시아 디폴트가 국내에선 재정적자 누적, 단기외채 급증에 외환보유액이 급감한 상황에서 국외에선 아시아 외환위기가 겹친 것이 대표적입니다.

다행히 디폴트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도 있습니다. 배네수엘라 디폴트는 국내에선 외화 부족현상에 이은 미국의 경제제재 강화로 타격을 입었지만, 국외에선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현상이 추가 확산되지 않으면서 선진국과 신흥국 경제가 동반 성장했습니다.

최근 러시아의 상황에서도 앞선 3차례 디폴트 당시와 비슷한 모습이 엿보입니다. 가용한 외화자금이 줄고 있고, 경기침체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강영숙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서방국의 대러제재로 대외자산의 약 40%를 차지하는 외환 보유액이 절반 이상 동결된 상황에서 유럽(EU) 등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중단 시 외화자금 가용 수준이 급감할 소지가 있다”며 “장기 불황을 동반한 디폴트가 회수율이 낮았던 전례가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올해 두 자릿수 역성장이 예상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러시아의 디폴트는 선진국 긴축 등에 따른 부담도 커진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며 “회사채 디폴트, 비은행 투자기관의 손실, 취약한 신흥국 불안 등이 전이 경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내 증시 영향 당장은 제한적…장기화 땐 위험

(출처=하이투자증권)

당장 국내 증시에 미칠 영향은 어떨까요? 다행히 증권가에선 아직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디폴트 우려가 커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이머징 경제가 큰 흔들림이 없고 경기부양 의지가 강해진 중국이 버티고 있는 만큼 리스크가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는 겁니다. 다만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될 때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언급도 나옵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를 제외한 주요 이머징 경제가 견조한 상태이고 무엇보다 전염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중국이 적극적인 방어에 나설 공산이 높기 때문에 전염 리스크가 본격화될 가능성은 낮다”며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빅스텝 기조 지속과 우크라이나 사태 혹은 러시아 제재 장기화에 따른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화될 때는 디폴트 전염 리스크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은 당장은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미 연준의 긴축기조 강화와 러시아 제재가 장기화 혹은 강화되고 있음은 디폴트, 특히 전염(Contagion) 리스크 측면에서 달갑지 않은 현상임은 분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과거 1998년 러시아 디폴트 당시와 달리 투자자들의 익스포져가 축소된 점이 위험을 제한하긴 하지만 금융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익스포져는 거래상대방의 신용도 하락, 채무불이행 등에 따라 경제적 손실 위험에 노출된 금액을 말합니다.

강 위원은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의 대러 익스포저 축소 등으로 러시아 디폴트 시에도 위험이 제한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라며 “주요국이 비용을 감수하고 대러제재 강화에 나서고 있어 시장이 러시아 디폴트, 인플레이션, 경기둔화 위험을 추가 반영할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소지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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