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우크라이나인의 사상을 말살하려는 시도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를 ‘제노사이드’라고 부른다”
12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에서 연설을 마친 뒤 워싱턴행 전용기로 향하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비행기 탑승 직전 기자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제노사이드(genocide)’, 즉 ‘집단학살’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푸틴 대통령을 향한 바이든 대통령의 강도 높은 비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푸틴 대통령을 ‘전범’이나 ‘독재자’, ‘폭력배’ 등으로 규정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번 ‘제노사이드’ 발언을 두고 전 세계가 떠들썩합니다. 그것도 찬반양론을 일으키며 말이지요.
논란의 중심이 된 제노사이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번 제노사이드 발언은 그간 푸틴 대통령을 향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들과는 무게감이 조금 다릅니다. 제노사이드가 국제법상 범죄 용어로 공식 등록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제노사이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때 처음 사용됐습니다. 이후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을 채택하면서 국제법상 범죄 용어로 정립됐습니다.
현재 유엔 협약은 제노사이드를 ‘국가나 민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할 목적으로 하는 범죄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정한 4가지 중대범죄(집단살해죄, 인도에 관한 죄, 전쟁범죄, 침략범죄)에도 포함됐습니다.
즉 제노사이드는 국제사회에서 단순 비난의 의미가 아닙니다. 유엔 협약 상 제노사이드라고 판단될 경우, 국제사회의 개입이 의무화되는 엄연한 법적 용어입니다.
이에 국제사회는 제노사이드 규정에 신중을 기하는 편입니다. 과거 미국 대통령들은 제노사이드 규정을 꺼리기도 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의 후투족이 투치족 80만 명을 학살했을 때 이를 제노사이드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이유입니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 힘입어 국제적 대응을 불러오는 법적 절차가 추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일각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제노사이드 발언’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미 행정부 내에서 제노사이드 규정 검토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 대통령으로서는 섣부른 발언이었다는 겁니다.
각국 정상 반응도 엇갈렸습니다. 12일(현지시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공영방송 France2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민족은 형제 같은 사이이므로 오늘날 이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러시아의 행위에 대해 제노사이드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절대적으로 옳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옹호했습니다.
한편 논란이 일자 백악관도 수습에 나섰습니다. 13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제노사이드 발언’에 대해 “그가 느낀 것을 말한 것”이라며 “(실제 규정에는) 법적 절차가 있다”고 해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