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한은맨 이주열 총재, 다음 달 떠난다… 지난 8년 행보는?

입력 2022-03-2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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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설립 후 최장수 근무… 굵직한 위기 속에서 통화정책 진두지휘

(한국은행)
'한국은행 설립 이후 최장수 근무자' '역대 세 번째로 연임한 총재' '사상 최초로 0%대 기준금리를 만든 총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나라 통화정책 수장을 맡았던 이주열 총재가 이달 말 임기를 마치고 한국은행을 떠난다.

그는 선제적이고 과감한 기준금리 조정으로 경제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적극적 통화스와프 체결 등으로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총재는 1977년 한은에 입행한 뒤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 부총재 등 주요 보직을 모두 거친 뒤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총재로 임명됐다.

4년 뒤 2018년 문재인 정권에서 연임에 성공했는데, 한은 총재가 연임한 것은 2대 김유택(1951∼1956년), 11대 김성환(1970∼1978년) 총재에 이어 역대 3번째다.

하지만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맡기 시작한 1998년 이후로는 최초 연임이고, 정권이 바뀐 상태에서 유임된 사례도 이 총재가 처음이다.

부총재 퇴직 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고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한 2년(2012∼2013년)을 빼고는 무려 43년을 한은에 몸담아 '최장수 한은 근무' 타이틀도 갖고 있다.

통화정책 결정 회의만 76회 참석

이처럼 이 총재는 우리나라 최고의 통화정책 전문가로서, 지금까지 금통위 본회의에만 17년간 참석해왔다.

"그 기간 제가 주재한 금통위 회의를 세어보니 통화정책 방향 결정 회의만 총 76회이더군요. 이중 고심 없이 쉽게 이루어진 결정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주열 총재가 이날 열린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이 총재가 2014년 4월 1일 취임할 당시 기준금리는 2.5% 수준이었다. 하지만 취임 보름 만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등으로 경기가 가라앉자 금통위는 같은 해 8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섰고, 이후 2015년 5월 메르스 사태와 2016년 6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등을 거치며 경기 지원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1.25%까지 낮췄다.

반대로 2017년 들어 국내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금통위는 11월 기준금리를 1.50%로 올린 뒤 이듬해 11월 1.75%까지 추가 인상했다.

하지만 2019년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 일본 수출규제 등의 악재가 이어지자 이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는 같은 해 7월과 10월 인하 결정을 통해 기준금리를 1.25%로 내렸다.

2020년 초 코로나19 충격이 시작된 뒤 3월 16일 임시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p)나 한꺼번에 낮추는 이른바 '빅컷'을 단행했고, 5월 28일 추가 인하로 사상 최저 수준인 0.50%까지 떨어뜨렸다.

지난해 국내 경제가 수출을 중심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저금리 장기화의 부작용으로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급등 등이 심해지자 8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같은 해 11월과 올해 1월 잇단 인상으로 1.25%까지 끌어올렸다.

지난달 이 총재가 주재한 마지막 통화정책결정 회의에서는 기준금리가 동결됐다.

이주열 총재는 이날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임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최근 2년간을 꼽기도 했다.

그는 "2년 전 이맘때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기관장들과 긴박하게 협의하고 토론해 전례 없는 정책 수단을 동원했던 일과 이후 작년 8월부터 다시 통화정책 정상화의 시동을 걸었던 일 등은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라고 답했다.

미국도 머뭇거릴 때 과감히 금리 인상

지난 8년간 금통위의 기준금리 조정 시점을 보면, 대체로 이 총재는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 기준금리를 빠르게 낮추고, 경기 회복세가 확인되면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8월과 11월, 올해 1월에 걸친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 시기는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물가 상승 압력 등을 과소평가하고 금리 인상을 머뭇거리던 때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출신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게재한 '제롬 파월 의장의 연준은 한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한은이 지난 8월 이후 두 번째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연준이 말만 할 때 한은은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 총재가 임기 중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은 물론 중국인민은행과도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거나 연장해 우리나라 외환 안전망을 탄탄히 갖춘 점도 성과로 거론된다.

이 총재 역시 재임 중 인상적인 순간에 대해 "2년 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후 금융시장 안정을 확인하고 안도했던 일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소통 강조하고 금통위 권위도 높여

이 총재는 '정책의 출발은 소통'이라고 강조하며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공을 들였다. 통화정책이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투명성·일관성·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 메시지를 낼 때 늘 사전에 정교하게 조탁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단어를 선택할 때는 사전적 의미와 함께 일반인에 수용되는 의미를 따로 분석했고, 표현을 갈고 닦아서 사용했다.

이 총재는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금통위의 권위 회복도 임기 중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금통위가 거수기가 아닌 치열한 정책 토론의 장이라는 점을 알릴 필요가 있었고, 이는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2014년 10월 금통위부터 소수의견 존재 여부를 당일에 공개했고, 2016년 2월부터는 소수의견 표명 위원의 실명을 밝혔다. 의결문 기술 방식에서도 경제상황이 전망경로에 부합하는지를 명시하고, 향후 통화정책 기준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시작했다.

한은 내부에선 아쉬운 목소리도

하지만 한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일부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최장수 한은 경력의 총재 '선배'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던 만큼, 보수와 복지 등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이주열 총재는 "준정부기관 예산 운용 지침이 적용되면서 급여 정도를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던 건 사실"이라며 "이를 개선하지 못한 것 못내 아쉽고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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