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현금화 가능한 자산도 1500억 못미쳐…업계 전문가들 '그룹 살리기'에 무게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진 두산중공업의 경영정상화방안이 이르면 다음 달 초 확정된다. 두산중공업은 이미 국책은행으로부터 1조원을 긴급 수혈 받았다. 또 한국수출입은행은 오는 27일 만기가 돌아오는 5억 달러(약 6000억 원) 두산중공업의 외화채권의 원화대출 전환을 21일께 결정할 예정이다.
두산중공업 위기는 사실상 두산그룹의 해체 가능성으로 직결될 수 있다. 그룹 전체 책임론으로 확산되며 핵심계열사들은 물론 주요 자산 매각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데, 만약 소위 ‘돈벌이’가 되는 계열사 매각 압박을 받을 경우 그룹의 존재 배경이 사라질 판이기 때문이다.
19일 재계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 회생을 위해 수익성이 담보된 계열사들을 팔게 될 경우 124년 두산그룹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룹 명맥을 이을 만한 계열사가 남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두산그룹 주력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최근 "매각 가능한 모든 자산을 팔겠다"며 채권단에 고강도 자구안을 제출한 상태며 채권단은 그룹에 경영지원단을 파견해 전반적인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두산중공업의 총 차입금은 4조1000억~4조2000억 원으로 올해 당장 갚아야 할 빚이 1조2000억 원이다. 5월4일 만기 예정인 5000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7000억 원 규모의 사업성 단기차입금(기업어음(CP), 전단채 등)은 연내 반드시 상환해야 한다. 이는 각각 보유 현금과 최근 수혈 받은 1조 원으로 해결할 방침이다.
그 외 이달 27일 만기 도래하는 5억 달러(약 6000억 원) 규모 외화사채는 수출입은행에 원화로 대출 전환을 요청한 상태며, 2조3000억 원에 달하는 은행권 단기차입금 역시 연장이 가능하다.
올해는 무사히 넘길 수 있지만, 남아있는 차입금 규모가 훨씬 커 채권단은 그룹 차원에서의 고강도 자구안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팔 수 있는 계열사 및 자산이 모두 거론되는 등 다양한 예상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두산 알짜 자회사인 두산솔루스 지분 전량(61%) 매각안은 이미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또 다른 신성장 동력인 두산퓨얼셀 지분 매각안도 제기되고 있다.
이 외에 두산건설, 유통사업부문, 오리콤 지분 매각 등도 거론된다. 특히 두산중공업 일부 사업 부문은 물론 당초 분할에 무게가 실렸던 알짜 자회사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매각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 모든 주요 계열사 및 자산 매각이 현실화 될 경우 두산그룹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실제 그룹에 ㈜두산, 두산중공업 외에 매각 최후의 보루로 거론되는 두산메카텍, 네오플럭스 등 소규모 회사 몇 개만 남을경우 이들 회사가 연간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은 물론 현금성 자산을 모두 합해도 각각 3000억 원, 15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두산, 두산메카텍은 지난해 각각 1619억 원, 184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네오플럭스는 6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두산중공업은 1000억 원을 못미치는 877억 원의 이익을 냈다. 5개 회사가 당장 현금화 시킬 수 있는 자산은 5000억 원에 육박하지만, 두산중공업의 현금(3458억 원)은 당장 BW 상환에 투입될 예정이므로 그만큼 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업계 전문가들은 계열사 대거 매각 보다는 최대한의 재무구조 개선을 통한 회생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본다.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등 사업적 중요도를 감안할 경우 매각 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그룹을 최대한 살리는 회생 쪽에 가닥을 잡더라도 자구안 실행에 따른 장단점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두산건설은 보유해도 애물단지, 매각해도 문제다. 불황속에 허덕이며 부채규모도 어마어마해 팔리기도 쉽지 않겠지만 매각될 경우 재무적으로 취약한 자회사가 없어지며 두산중공업 신용도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매각 금액이 낮을 가능성이 커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인프라코어·두산밥캣이 자구안에 포함될 경우 매각 보다는 수직 계열구조 해소에 더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두산중공업의 재무 위험성이 이들 기업에 전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우량 기업을 유지하게 된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을 통해 보다 원활한 자금조달도 가능해진다.
다만, 이 경우 두산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고 자산 중 자회사 지분가액이 50% 이상이면 지주사로 강제 전환된다. 현재 ㈜두산이 자회사 지분을 4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산인프라코어를 자회사로 거느리게 될 경우 지분가액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회사 지분을 40% 이상(상장사는 20% 이상) 소유해야 하는 지주사 체제 규정으로 엄청난 비용 부담이 생긴다.
그 외 두산퓨얼셀, 오리콤 지분 등도 매각할 경우 그룹 재무구조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이들 자산 역시 상당부분 담보로 제공돼 있어 매각이 될 경우 두산 차입금 축소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현금 유입 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내다봤다.
재계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가 그 어떤 때보다 심각한 두산그룹 자구안을 예상하는 온갖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면서 "그룹을 살리기 위한 가장 적합한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