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부 차장
미국과 이란 모두 이렇게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각자의 명분과 이해관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미국 입장에서는 시아파 종주국으로서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 예멘에 이르기까지 중동 곳곳에서 반군을 지원,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는 이란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이란은 미국에 굴복하면 자신들의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뿌리 깊은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나 양국은 자신들은 물론 중동 각국, 더 나아가 세계 경제를 파괴할 수 있는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물밑에서 지금의 갈등을 풀 수 있는 출구전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신경전이나 국지적 도발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지금처럼 서로 위험한 도발을 하다가 예상치 못한 사태가 터져 ‘피의 전쟁’이 시작되면 모두가 망할 수밖에 없다.
먼저 미국을 살펴보자. 만일 미국이 전면적으로 이란을 타격하고자 하면 세계 최강의 군사력으로 수주 만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쟁은 미국이 새로운 수렁에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이런 상황을 이미 목격했다. 또 시리아 사태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란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트럼프가 새해 들어 이란에 강경하게 나가는 것에 대해 올해 미국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유권자들은 전쟁과 테러 등 위기에 빠졌을 당시 현직 대통령에 표를 몰아줬다. 조지 W. 부시는 9·11 테러를 막지 못했지만 재선에 성공했다. 게다가 외국과의 긴장 국면은 미국 내 탄핵 정국 돌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런 얄팍한 정치적 이점을 노리고 트럼프가 지금과 같은 전략을 취했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트럼프는 그동안 중동 혼란에 발이 묶였던 전임자들을 비판하면서 미군 철수를 추진했는데 스스로 이에 역행하는 행보를 취한 것이다. 이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 아프간 전쟁 등으로 염증을 느끼는 미국 유권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게다가 뉴욕증시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살아나고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도 후퇴하는 등 세계 경제가 2020년을 희망차게 시작했는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트럼프가 제 발등을 찍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란 지도자들도 지금 당장은 ‘구국의 영웅’ 솔레이마니가 죽어서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불사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탈출구를 마련해야 한다. 1953년 군사 쿠데타 조정과 팔레비 왕조 지원 등으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란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량도 안 되면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국민을 굶어 죽게 할 셈인가. 경제가 도탄에 빠지고 국민은 생활고에 시달리는데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무책임한 일이다. 물론 미국에 절대 굴복하기는 싫겠지만 어설프게, 되지도 않는 전쟁을 한다고 설치느니 과감하게 대화와 협상에 나서는 것이 상책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