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응 논리 마련 위한 연구용역 발주…내부 태스크포스도 출범
농식품부는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WTO 개혁 논의 및 제12차 WTO 각료회의 대응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올 초부터 WTO 개도국 지위 결정 방식을 개편하라고 지속해서 요구해온 미국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WTO 협정상 개도국은 보조금과 관세 제도 등을 운영할 때 선진국의 3분의 2를 이행하면 된다. 한국은 1995년 농업 분야에서만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회원국 △1인당 국민소득 1만2056달러 이상 국가 △세계 상품 교역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 등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네 가지 조건 중 한 가지라도 해당하는 나라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모두 33개국이다. 중국과 인도를 겨냥한 조치라는 분석이 많지만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나라는 한국뿐이어서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이번 연구 용역의 핵심은 개도국 지위 유지를 위한 농업 지표 개발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하는 경제적 지표만으론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통용되는 대표적인 농업 지표인 농가 소득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농업 생산 비중도 선진국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게 농식품부의 고민이다.
연구를 이끌고 있는 김상현 KREI 부연구위원은 "농업(수준)을 판단하기에 단순히 경제적 지표로만 판단하기에 부족하기 떄문에 우리가 협상에서 제시할 수 있는 비경제적 지표를 찾아볼 것이다. 새롭게 만드는 건 아니고, 다른 나라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른 기존에 공표된 설득력 있는 통계를 발굴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용역에선 내년 카자흐스탄 누르술탄에서 열리는 제12차 WTO 각료회의(MC-12)에 대비한 협상 대응 방안도 검토한다. KREI 등에선 MC-12에서 국내 보조금 축소, 시장접근 확대 등 농업 시장 개방이 의제로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연구 용역 결과는 내년 2월께 나올 예정이다.
농식품부는 WTO 개혁에 대비한 태스크포스도 지난주부터 가동했다. 연구 용역과 별도로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박병홍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이 태스크포스 좌장을 맡았다.
한편 농식품부는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의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차기 농업 협상까지는 기존 관세나 보조금 제도를 존중할 것이라고 미국이 보증한 만큼 실제 변화는 없다는 분석이다. WTO 내 농업 협상은 미ㆍ중 간 충돌로 2008년 도하개발어젠다(DDA) 4차 수정안 채택에 실패한 이후 10년 넘게 멈춰선 상태다.
김경미 농식품부 농업통상과장은 "중국과 인도가 반대하면 차기 협상 재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