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일상으로 사용하는 말로 여기기에는 왠지 섬뜩한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관세폭탄’, ‘무역전쟁’이라는 말 정도는 이미 일상화하여 ‘전쟁’, ‘폭탄’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민생폭탄’, ‘세금폭탄’, ‘해고폭탄’이 마구 내려온다고 하며 ‘폭탄’이라는 말을 거푸 사용하였다. 야당 대표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부가 하는 일이 못마땅하니까 비판의 차원에서 그렇게 ‘폭탄’이라는 말을 했겠지만 어쨌든 고운 말이나 바른 말은 아니다. 꼭 이렇게 말을 강하고 험하게 해야만 설득력을 갖는 것일까? 말은 최대한 부드럽게 하면서도 정확한 근거가 있고 알찬 내용이 있으며 객관적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철학과 소신이 있을 때 더 설득력을 갖는 게 아닐까?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험한 말을 쏟아낸 때문인지 우리 사회 전반에 험한 말들이 넘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집회를 갖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사수’라는 말을 사용한다. ‘○○권 사수’, ‘○○법 사수’ 등을 외치다 보니 심지어는 ‘생존권 사수’라는 말도 나오고, 어느 방송사에서는 간을 잘 관리하자는 건강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간을 사수하라”는 표제를 내걸기도 했다.
‘죽을 사’, ‘지킬 수’를 쓰는 ‘사수(死守)는 ‘죽음으로써 지킴’, ‘목숨 걸고 지킴’이라는 뜻이다. 살기 위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니 어리둥절하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간을 잘 관리하자는 프로그램에서 ‘죽음으로써 간을 지켜라’라고 하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말이나 행동에는 ‘회전곡선’이 있어야 한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여 빠져나올 틈이 없게 할 게 아니라, 돌아서 빠져나올 여지를 남겨 둬야 한다는 뜻이다. 여지도 여유도 없이 몰아붙이는 언행으로는 결코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 死守, 죽음으로써 지키자는 말이 나돈다는 것은 그만큼 죽어야 할 사람이 많다는 뜻이 아닌가? 어찌 섬뜩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