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원 하는 셰익스피어 전집 초판(初版)의 가격이 2판에 비해 몇 배가 넘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책만큼은 못해도 ‘수집’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만년필 역시 초기 산은 가격이 높다. 다만 모든 초기 산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명작이어야 하고, 초기 산을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130년 넘는 만년필 역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첫 번째는 1921년에 출시된 오렌지색 파커 듀오폴드다. 듀오폴드는 검은색 일변도(一邊倒)의 만년필 세계에 파랑, 노랑 등 컬러 제품을 선보인 명작이다. 초기 산 듀오폴드는 뚜껑에 밴드(Band:반지 같지만 납작한 금속 고리)가 없는 것이 나중의 것들과 눈에 띄게 차이나는 부분이다.
밴드가 있고 없고에 따라 가격은 최고 4배까지 차이가 난다. 지금의 경우 고급 만년필은 뚜껑에 밴드가 있는 것이 공식처럼 정해져 있지만, 1920년대 초에 밴드는 필수가 아니었다. 밴드가 필수처럼 여겨지는 것은 미국의 경우 1920년대 후반, 독일의 경우는 1930년대 초부터이다.
밴드가 없어 초기 산으로 쉽게 판별할 수 있는 명작은 독일에도 있다. 1929년에 출시된 펠리컨사의 첫 번째 만년필이다. 이 만년필이 명작인 이유는 몸통 끝에 있는 손잡이를 돌려 잉크를 넣는 방식인 피스톤 필러의 원조이기 때문인데, 1930년대 것들과 구별되게 밴드가 없다. 이것 역시 밴드가 있는 나중의 것들에 비해 수배의 가격에 거래된다.
마지막은 빼놓을 수 없는 현대의 명작인 몽블랑149이다. 몽블랑149는 1952년에 출시되어 현재까지 중단 없이 생산되고 있는 최장수 만년필이다. 초기 산은 캡 상단의 화이트스타가 아이보리색이고, 잉크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 충전장치가 살짝 다르지만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 밴드가 가장 중요한 힌트가 된다.
몽블랑149는 밴드가 세 줄인데 가운데가 굵고 위와 아래는 가늘다. 위와 아래의 가는 두 줄의 밴드가 나중 것들과 다르다. 초기 산은 은으로 만들어져 은색이다. 나중 것들은 황동(黃銅) 위에 도금이 되어 있어 금색이다. 은으로 된 두 줄은 변색되고 늘어나는 단점이 있지만 몽블랑 마니아들은 몇 배를 더 주고도 살 만큼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은 몽블랑에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만년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