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211. 희명(希明)

입력 2017-10-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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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도로 아이를 눈뜨게 한 모정

희명(希明)은 통일신라시대 사람이다. 경덕왕(景德王) 때 경주 한기리(漢岐里)에 살았다. 혼인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남편의 이름도 남아 있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한미한 집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희명이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본명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희명(希明)은 밝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아이의 눈이 다시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랐던 일화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희명의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다. 희명에게는 아이가 있었는데 5세가 되던 해에 갑자기 눈이 멀었다. 왜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시력은 영양 상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끼니를 제대로 챙기기 어려웠던 전근대 시대에 후천적인 실명(失明)은 영영실조로 인한 것이 많다고 한다. 희명의 아이 역시 영양 상태와 관련이 있었을 수도 있다.

갑자기 아이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을 때 어머니인 희명의 감정은 헤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먹을 것이 부족해서 아이가 눈을 잃게 되었다면 부모로서 자책감은 더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먹을 것도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형편에, 이름난 의사나 좋은 약을 쓸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눈이 안 보이게 된 자식을 그냥 두고 볼 수도 없었다.

희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 아이를 안고 분황사(芬皇寺)로 갔다. 분황사 왼편 전각 북쪽 벽에는 솔거(率居)가 그렸다고 하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이 그려져 있었다. 천수관음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갖춘 관음보살이다. ‘천(千)’이라는 것은 무한의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관음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가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희명은 대자대비한 천수관음 앞에 가서 아이로 하여금 노래를 지어 빌게 하였다. 이때 부른 노래가 신라시대 향가(鄕歌)의 하나인 ‘천수대비가(千手大悲歌)’이다. ‘맹아득안가(盲兒得眼歌)’라고도 하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져 온다.

향찰(鄕札)로 표기되어 연구자들마다 해석에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천 개의 손과 눈을 가진 관음 앞에 합장하고 앉아, “두 눈이 없는 내게 눈을 주신다면 그 자비로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라는 기원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본다. 천 개의 손과 눈을 가진 관음께 자식의 눈을 뜨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노래를 마친 뒤 아이가 눈을 뜨게 됐다. 희명의 절절한 기도가 관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삼국유사’의 편자인 일연스님은 분황사에 모셔진 천수관음의 영험담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겠지만, 여기서는 불치병의 자식을 위해서 기도밖에는 할 수 없었던, 자식이 광명을 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 ‘희명’의 마음이 이름처럼 전해오는, 가진 것도 기댈 곳도 없었던 통일신라시대 여성의 절절했던 모정을 주목하고자 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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