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뜨거웠다. 점심 시간에 여의도에서 겨우 10분을 걸었을 뿐인데 증권사(호텔롯데 상장주관사를 한 개인으로 의인화) 씨의 등줄기에는 땀이 가득했다. 이리저리 사람들의 어깨를 피하며 내쫓기는 걸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몸에 찰싹 달라붙은 하늘색 셔츠의 등은 창백했다. 보진 못하지만 보이기는 싫었다.
증 씨의 오전은 우울했다. 오랜 기간 공을 들인 기업의 상장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한 프로젝트였다.
보고서에는 뭐라고 두드리고 이를 상사에게 건넬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동안 너희 팀에 들인 지원 노력은 어떻게 메울 거냐?” 비꼬듯 풀리지는 않을 그의 말투가 벌써 생생했다. 6월인데 사무실은 왜 이리 덥고 에어컨은 왜 안 틀어주는지. 그놈의 전기료를 아끼면 누가 이로운지. 누구 잘살라고 이러는 거냐고. 생각할수록 그는 화가 났다.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증 씨는 오후에는 집에 돌아갈 걱정도 해야 했다. 그는 해당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성과 보수를 받을 것을 예상하고 이미 지난해 차를 바꿨다. 차입 구매다. “이제는 우리 가족도 중형차를 탈 때지.” 배우자 앞에서 호기롭게 외치던 작년 말의 그의 모습이 선했다.
“아 왜 그랬지. 술이나 한 잔 하고 들어가자.” 그는 문서 작성보다는 회사 동료와 PC용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주력했다. 이런 때에도 졸음은 어김없이 쏟아졌다. 눈이 반쯤 감기다가도 배우자의 서릿발 시선이 뒤통수를 쳤다. 고개가 박스권에서 위아래로 출렁이더니 제자리로 왔다. 정말 이곳이 제 곳인지는 증 씨도 알 수 없었다. 어느새 턱까지 흘러내린 식은땀은 손등에 맺혀 있었다.
그가 차를 무리하게 산 것은 사내 동료를 의식한 탓이었다. 직장 동료인 미래 씨와 대우 씨는 결혼하면서 자택과 혼수를 남부럽지 않게 준비했다. 적어도 사내에서는 이들의 결혼을 부러워하는 동료가 한둘은 아니었다. 금수저에 맞서는 소심한 자기만족형 저항. 증 씨가 차를 바꾼 이유였다.
퇴근 이후에도 그에게 반전은 없었다. 상장이 무산된 기업의 오너가를 항햔 검은 날을 벼리였다. 나라님께서 부패를 척결하시겠다는데…. 증 씨는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신 씨(롯데그룹 오너일가)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키보드 워리어 뿐.
“또 내 탓이냐? 40대도 아파야 40대냐?” 증 씨는 퇴근 후 술자리에서 동료에게 소리를 질렀다. 1차가 끝났지만 눈은 여전히 부셨고 땀은 멈추지 않았다. “2차 가자”는 말에 동기는 “회사 분위기도 안 좋은데 무슨 술을 또 마셔. 조만간 구조조정도 있다는데 얼굴 벌겋게 출근하고 싶으냐”며 나무랐다. 해는 지겹게 길어졌다. 어두워야 제 정신인데. 증 씨는 터벅터벅 걷고 또 걷고, 그렇게 무의미한 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