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무역을 자유화하겠다는 건데, 자신 있는 운용사 몇이나 있을까요?”
아시아 펀드패스포트 제도 도입을 앞둔 자산운용사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운용사들은 펀드패스포트 제도 도입에 적극 반대 의사를 표했지만 금융당국이 적극적인 규제 완화로 당근책을 쓰자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다.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는 한국과 호주, 일본, 뉴질랜드가 펀드패스포트 시행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펀드패스포트 제도는 체결국 간 공통의 펀드 등록ㆍ판매 규정을 마련하고 역내 국가 간 펀드를 쉽게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일종의 ‘펀드 무역 자율화’ 조치다. 하반기 자본시장법 등 관련법 개정을 거쳐 2018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는 10여년 전 크게 논란이 됐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펀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국내 농업계가 미국의 대량-저가 생산 시스템에 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 것처럼 펀드패스포트 도입 논의 초기에도 국내 펀드산업 경쟁력이 외국보다 뒤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펀드패스포트 논의가 시작되던 2013년 자본시장연구원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펀드시장 비중은 20.8%로 중하위권에 해당한다. 양해각서 체결 국가인 뉴질랜드(14.9%)와 일본(18.3%)에 비하면 소폭 높지만 호주(124%)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앞으로 펀드패스포트에 참여할 가능성이 큰 홍콩(417%), 싱가포르(475%) 등과 비교하면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보다 금융산업이 활성화돼 있는 홍콩과 싱가포르도 펀드패스포트로 자국 산업이 위축될까 염려해 제도 도입을 미루고 있는데 한국이 먼저 시장을 내줄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는 전체 581개 상품 중 92.8%인 539개에서 손실이 날만큼 운용성과가 형편없었다. 심지어 펀드보다 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더 커지는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금융 당국은 운용업계 규제 완화에 팔을 걷어붙인 상황이다.
지난해 말에는 전문사모집합투자업 등록 요건을 완화했고 최근에는 국내 공모펀드 운용성과를 높이기 위한 유인을 제공하겠다며 수익률에 따른 성과보수제를 도입했다. 심화된 경쟁 상황에서 국내 운용사들의 실력도 강화될 것이라는 의도다.
그러나 심판대에 오른 운용사들은 식은땀을 내고 있다. 글로벌 투자금융(IB)그룹을 만들겠다는 금융당국 목표에 ‘국내 보호 육성책’이 맞는지 ‘글로벌 경쟁 시장 진출’이 맞는지도 아직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규제를 완화하면서 한국은 외국에 비해 차이니즈 윌 등 장벽이 높아 수익률을 내기 어렵다는 핑계도 대기 어렵게 됐다”며 “한미 FTA나 영화 스크린 쿼터제 이슈 때처럼 우려보다 국내 산업이 선방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