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 소설가
강원도 여행은 겨울이면 언제나 그 위에 눈이 얹어진다. 겨울에 눈이 없는 강원도는 아무래도 좀 심심하다. 하늘에서 뿌린 눈이 없다면 곳곳에 있는 스키장의 인공눈이라도 보고 와야 직성이 풀린다. 남쪽지방과 서울과 경기지역엔 없는 눈이 그래도 겨울 강원도에 가면 희끗희끗 보인다.
겨울 대관령의 추위는 경험한 사람들만 안다. 요즘은 모두 집안 욕실에서 세수를 하지만, 예전에 부엌의 더운물을 퍼서 마당가에서 세수를 하던 시절, 세수를 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말굽자석에 작은 못이 달라붙듯 손이 쩍쩍 달라붙었다. 그 추위 속에 한겨울 내내 황태덕장엔 명태들이 매달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애초의 거무칙칙한 색깔에서 노란 황태 색으로 변해간다.
예전에 강릉 부근에 있는 주문진 고깃배들이 잡은 명태는 대관령으로 올라오고, 속초와 거진 쪽에서 잡은 명태들은 진부령과 미시령을 넘어 백담사 앞 용대마을로 왔다. 그런데 요즘 동해바다엔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 명태는 한류성 어류이고 언제부터인가 동해바다의 수온이 올라가며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대관령과 백담사 앞 용대마을에 걸려 있는 황태도 동해바다 명태가 아니라 러시아산 명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옆으로 여름과 가을에 고랭지 채소농사를 지었던 무밭 배추밭들이 희끗희끗한 눈 속에 펼쳐져 있다. 곡식 농사는 풍년 흉년 구별이 있어도 고랭지 채소 농사는 풍년 흉년 구별이 없다. 배추 농사 무 농사가 잘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뭄 장마 폭우 등으로 그해 채소 가격이 어느 선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수확을 할지, 아니면 그대로 밭에서 썩혀버릴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늦가을과 초겨울, 이따금 그 길을 달리며 보면 바다처럼 너른 밭에 뽑지 않은 배추들이 하얗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고향 사람으로서 그것이 한없이 가슴 아프다.
더러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그걸 서울로 뽑아 올리는 게 낫지 않으냐고. 그러나 무 배추가 너무 흔한 해엔 한 차 가득 꽉꽉 밟아 다지듯 싣고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으로 가봐야 밭에서의 상차 작업비와 자동차 운임, 고속도로 통행료 시장 반입비 등 이것저것 떼고 나면 싣고 올라간 사람의 점심값조차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요즘은 주말마다 도시 사람들이 동쪽 바다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보러 온다. 일출이라면 또 동해바다가 아니겠는가. 예전에는 하루 비둘기호 열차만 서울로 가면서 세 번, 강릉으로 오면서 세 번 서던 정동진역이 떠오르는 해를 보려는 손님들로 하루 스물여섯 번 기차가 서는 번잡한 역으로 바뀌었다. 사실 동해의 일출은 부산 광안리에서부터 북쪽으로 휴전선 철책 끝 지점까지 어느 바다에서 보아도 다 장엄하다.
똑같은 해여도 그래도 한 해가 시작하는 1월에 일부러 가서 보는 일출의 의미가 다르다. 아직 올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지 못했다면 이번 주말이라도 짐을 꾸리라고 이렇게 막 부추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