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민 세종취재본부장
롯데가 일본기업인지 한국기업인지에 대한 정체성 문제는 롯데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에 일어난 문제다. 특히 한국롯데의 지배주주가 일본에 있기 때문에 롯데를 한국기업으로 볼지는 상당한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최근 입국하면서 “롯데의 매출 95%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한국기업이다”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매출이 한국에서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한국기업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외국인 지분이 많다고 외국기업이라고 할 수 없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총 지분율은 지난 4일 기준으로 51.60%다. 이같이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었다고 삼성전자를 외국기업으로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글로벌 시대에 롯데의 정체성 문제로 일부에서 불매운동 얘기가 나도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면세점 특허와 관련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면세점 사업은 국가가 세수를 포기하고 그 이익을 기업에 돌려주는, 국가가 제공하는 특혜사업이기 때문이다.
오는 12월이면 롯데면세점의 서울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의 특허가 만료돼 다시 관세청의 입찰심사를 받아야 한다. 롯데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롯데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99%가 일본계 자금이다. 호텔롯데의 소유 지분율을 살펴보면 올해 3월 31일 기준으로 일본롯데홀딩스가 19.7%로 대주주다. 다음으로 일본 L제4투자회사가 15.63%, 일본 L제9투자회사가 10.41%, 일본 L제7투자회사가 9.4%를 보유하고 있다. 호텔롯데 자사주 0.17%와 계열사인 부산롯데호텔 0.55%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도 일본 L투자회사와 일본 광윤사, 일본 패미리 등 일본계 자금이 보유하고 있다. 호텔롯데의 지분 99.28%가 일본계 자금이다. 호텔롯데가 일본계 주요 주주에게 준 배당금만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2000억원 정도다.
반면 롯데면세점이 지난해 서울 시내 면세점 기준으로 1조9760억원의 매출을 올려 국가에 납부한 수수료는 9억40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면세점 판매 수익은 세금을 면제하는 대신 수익의 0.05%에 해당하는 금액을 특허수수료로 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세점 사업은 국가가 특혜를 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산업으로 불린다.
문제는 특수목적법인(SPC) 형태로 설립된 일본 L투자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잘 알려지지 않아 호텔롯데의 지배구조가 사실상 불투명한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가 수익을 포기하고 호텔롯데에 다시 면세점 특허를 준다고 한다면 과연 이해할 수 있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국부유출 문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가진 호텔롯데에 정부가 나서서 특혜를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일본계 자금이 지배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호텔롯데의 면세점 특허를 무작정 회수하는 것은 가혹하다. 하지만 지금 형태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가진 호텔롯데가 계속 면세점 사업을 이어가려면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면세점 사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난 2013년 관세법 개정으로 기존 면세점을 재승인하는 형식에서 5년마다 입찰을 통해 특허권을 확보하도록 한 법 취지를 잘 생각할 필요가 있다.
롯데면세점이 지난 35년간 뛰어난 경쟁력으로 글로벌 면세사업자 3위까지 오른 공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형제의 난으로 불거진 롯데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온 국민에게 알려진 이상 다른 사업은 몰라도 정부의 특혜를 받는 면세점 사업에서는 최대주주와 주요주주의 지배구조를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롯데면세점 사업을 하는 호텔롯데의 지분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롯데는 호텔롯데에서 면세점 사업을 따로 분리해 한국 지배주주가 있는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방안까지 고려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문호를 개방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면세점이라면 몰라도 시내면세점 특허 선정에서 지금과 같이 일본계 자금이 99%를 소유하고 있는 호텔롯데에 특혜를 준다면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