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춘축(春祝)의 문구로 가장 많이 쓰이는 ‘입춘대길’의 짝은 건양다경(建陽多慶)이다. 햇볕이 밝고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을 것이라는 축원이다.
고대 동양의 세계관에서 양(陽)은 천(天)·동(動)·외(外)·남(男)·부(父)·부(夫)를 상징한다. 음(陰)은 지(地)·정(靜)·내(內)·여(女)·모(母)·부(婦)를 상징한다. 천지간의 모든 사물은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음양이 조화되지 않으면 우주 질서가 깨진다.
건양은 1896년 1월 1일부터 1897년 8월 16일까지 사용된 조선의 연호이기도 하다. 고종 32년인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1896년 1월 1일부터 이 연호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건양다경’이라는 문구는 이 연호가 제정되면서 쓰이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이때 양력을 도입했기 때문에 ‘건양다경’에는 양력을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주장이다. 조선 정조~순조 때의 문인 홍석모(1781∼1857)가 지은 <동국세시기>에 이미 잘 쓰이는 대련(對聯)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이 소개돼 있다.
을미(乙未)년인 올해와 같은 양의 해에는 건양다경 대신 삼양(三羊)다경이나 삼양개태(三羊開泰)도 많이 쓴다. 삼양은 원래 三陽,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면서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시절을 말한다. 삼양개태는 만물이 깨어나는 시절에 태평을 이룬다는 뜻인데, 羊과 陽의 발음이 같은 데다 양은 아름답고 상서로운 동물이어서 三陽이나 建陽 대신 三羊을 쓰는 것이다.
건양이라는 연호는 1897년 환구단에서 고종이 건원칭제(建元稱帝)를 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光武)로 바꾸면서 폐기됐다. 건원칭제는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나타내기 위해 왕을 황제라고 부르고 독자적 연호를 정해 사용한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