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승계도 ‘생산적’ 전환… 혈연 넘어 임직원으로 [CEO 고령화와 ‘승계절벽’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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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승계 넘어 MBO·EBO 부상…고령 경영자 내부승계 수요 확인
日 내부 임직원 승계, 친족승계 추월…금융·세제 지원이 확산 뒷받침
국내는 가족승계 중심 지원 여전…인수금융·세제·제도 보완 과제

기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반드시 자녀일 필요는 없다. 회사를 가장 잘 아는 경영진과 임직원도 후계자가 될 수 있다. 기업승계를 단순한 재산 이전이 아니라 기업의 존속과 경쟁력을 지키는 과정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혈연의 울타리를 넘어 후계자를 찾는 ‘생산적 기업승계’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9일 관련 기관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승계는 경영권과 지분 이전에 그치지 않고 후계자 육성, 지배구조 정비, 세무·자금계획까지 장기간 준비가 필요한 경영 과제다. 승계 실패가 고용과 공급망,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기업의 기술과 일자리, 사업 기반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다양한 승계 방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대안이 MBO(경영자 인수·Management Buyout)와 EBO(종업원 인수·Employee Buyout)다.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영진과 임직원이 창업주의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을 이어받는 방식이다.

내부 인력은 기업의 기술과 생산공정, 거래처,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승계 이후에도 사업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쉽다. 자녀승계는 후계자의 경영 의지와 역량이 전제돼야 하고, 제3자 매각은 새 소유주 유입에 따른 조직 개편이나 전략 변화 가능성이 있다. 반면 내부승계는 기술과 노하우의 단절을 줄이고 고용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창업주가 일정 기간 고문이나 명예회장으로 남아 후임 경영진을 지원하면 세대교체 과정의 충격도 줄일 수 있다.

국내에서도 내부승계 수요는 뚜렷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25년 중소기업 기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할 계획이 없거나 아직 승계 방식을 결정하지 못한 기업 265곳 가운데 16.6%가 향후 계획으로 ‘임직원 승계’를 꼽았다. 특히 60세 이상 경영자 가운데 임직원 승계를 선택한 비율은 30.2%로 가장 높았다. 승계 시점이 가까워진 고령 경영자일수록 내부승계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해외에서는 임직원 승계가 이미 주요 기업승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 2023년 기준 MBO 등을 포함한 내부 임직원 승계 비중이 35.5%로 친족 승계(33.1%)를 넘어섰다. 한국처럼 중소·중견 가족기업 비중이 높고 경영자 고령화가 빠른 독일에서도 MBO가 가족승계의 대안으로 확산하고 있다. 영국은 기존 오너가 지배지분을 종업원소유신탁(EOT)에 넘길 경우 세제 혜택을 제공해 직원 소유 방식의 승계를 뒷받침한다.

일본에서 임직원 승계가 확산한 배경에는 장기간 축적된 정책 지원이 있다. 사업승계 기업에 신용보증을 확대하고 일본정책금융공고의 특별대출을 지원한다. 사업승계 펀드를 통해 MBO에 필요한 지분 인수자금을 공급하고 승계 이후의 경영도 지원한다. 내부에 적합한 후계자가 있더라도 오너 지분을 사들일 자금이 없으면 승계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정책금융으로 보완한 것이다.

반면 국내 기업승계 지원은 여전히 가족 내 승계를 전제로 한 세제 혜택에 무게가 실려 있다. 자녀가 아닌 경영진이나 임직원이 회사를 이어받으려 해도 활용할 수 있는 금융·세제 지원은 제한적이다. 이에 임직원 승계를 독립적인 기업승계 방식으로 인정하고 지분 인수자금 마련을 위한 특례대출과 정책펀드, 세제 지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도 MBO·EBO 활성화를 위한 기반 마련에 나섰다. 우리은행 기업승계지원센터는 올해 4월 김앤장 법률사무소, 삼일회계법인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국내 환경에 맞는 MBO·EBO 승계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자체적인 자금지원 방안을 검토하는 동시에 정부 산하 기관 등과 연계한 금융지원 모델도 모색할 계획이다.

김유재 우리은행 기업승계지원센터장은 “기술집약적 제조업이나 전문성이 높은 업종에서는 기업을 가장 잘 이해하는 내부 인력이 경영을 이어가는 것이 사업 연속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세제 혜택과 금융지원 체계를 확충하고 성공사례를 축적해 다양한 승계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MBO·EBO가 모든 기업에 적합한 해법은 아니다. 지분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차입이 발생하면 기업의 재무부담이 커질 수 있다. MBO는 회사 내부정보를 가진 경영진이 동시에 매수자가 되는 만큼 기업가치 산정과 소수 주주 보호 과정에서 이해상충 가능성도 존재한다. EBO 역시 안정적인 경영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이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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