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레버리지 사태에 묻힌 ‘AI 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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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에서 인공지능(AI) 협력의 길을 넓히고 남미에서 희토류와 리튬 공급망을 챙기는 동안, 정작 국내 증시를 뒤흔든 것도 AI였다. 해외에서는 미래 첨단산업의 성장 기반을 다졌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AI·반도체주 급락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같은 시기, 같은 산업을 둘러싼 두 장면은 이번 순방의 성과와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순방의 설계는 정교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기술과 자본을, 브라질과 칠레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핵심광물과 에너지 공급망을 챙겼다. 기술 단독으로는 첨단산업 주권을 지킬 수 없는 시대에 한국이 무엇을 선점하고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이 대통령은 먼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혹 탄 브로드컴 CEO 등 글로벌 AI 생태계를 이끄는 인사들과 잇달아 만났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 역량과 전력·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묶어 글로벌 기업의 투자와 연결하려 한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을 AI 반도체 생산기지이자 글로벌 테스트베드로 자리매김하려는 국가 전략을 구체화한 것이다.

남미 순방은 이 구상을 자원안보로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브라질과는 희토류·에너지·방산 협력을 넓히고, 칠레·아르헨티나와는 구리와 리튬을 중심으로 자원 협력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확대에 필요한 구리, 배터리 산업의 핵심 원료인 리튬을 탐사와 개발, 가공, 재활용까지 연결된 공급망으로 확보하려 한 것은 산업 구조를 정확히 읽은 행보다.

과거 정상외교가 선언이나 양해각서 체결 자체를 성과로 내세우는 데 머물렀다면, 이번 순방은 기술과 자원, 제조 역량을 하나의 산업 전략으로 엮으려 했다는 점에서 협력의 내용이 한층 구체화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런 성과는 국내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대통령이 해외에서 AI 산업의 미래를 설계하던 바로 그 시점, 코스피는 사흘간 17% 가까이 폭락했다. SK하이닉스 실적과 주주환원에 대한 실망, 중국 창신메모리 상장에 따른 반도체주 수급 이탈, 미국 빅테크발 AI 밸류에이션 우려가 한꺼번에 시장을 덮쳤다.

정부로서는 이번 급락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단일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변동성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 점이 특히 뼈아프다. 이 대통령의 순방을 수행 중이던 김용범 정책실장은 상파울루 현지 브리핑에서 이번 증시 변동성을 레버리지 ETF 하나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되며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적 특성과 기업 실적, 외국인 수급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급락의 원인을 특정 상품 하나에만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틀린 진단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 하락에는 기업 실적과 글로벌 반도체 경쟁, 외국인 수급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다만 김 실장이 이 상품의 도입을 주도한 정책 책임자라는 점에서 시장은 원인에 대한 설명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답을 기대했을 것이다. 정책 취지를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상보다 크게 드러난 부작용을 어떻게 점검하고 보완할 것인지 분명한 원칙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대통령의 지시 하에 금융당국은 지난달 31일부터 레버리지 ETF에 대한 첫 보완 조치를 시행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책임 공방보다 대책의 실효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첫 조치가 과도한 변동성을 얼마나 줄이는지 면밀히 점검하고, 효과가 제한적이라면 추가 보완에 나서야 한다. 상품 구조와 거래 규칙, 위험 고지 체계에 허점이 있다면 다시 손보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번 순방은 한국이 AI와 반도체, 핵심광물 공급망을 하나의 성장 전략으로 연결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해외에서 기술과 자원의 길을 넓히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경제외교의 성과가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이를 뒷받침할 자본시장의 안정과 정책 신뢰가 함께 서야 한다. 순방의 성과가 빛을 발하려면 해외에서 성장의 기반을 넓히는 일만큼, 국내에서 정책의 부작용을 정교하게 관리하는 일에도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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