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혁신 생태계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야 할 코스닥이 여전히 대장주를 잃는 잔혹사를 반복하고 있다. 1996년 7월 출범해 30년간 자본시장의 한 축을 맡아왔지만 공룡주로 무게를 키운 기업이 이삿짐을 싸는 현실은 여전히 되풀이된다. 최근엔 코스피가 불꽃놀이를 벌일 때 남의 잔칫상을 구경하 듯 문밖의 찬밥 처지에 놓였다.
코스닥은 긴 시간 ‘코스피 2군’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대장주가 코스피로 자리를 옮기고 남은 시장에선 불안정성이 부각됐고, 장기 투자보다 단기 테마 추종 시장으로 인식됐다. 동전주가 쌓이고 기관 자금은 머물지 않았다. 여기에 일부 상장사들의 부실 경영 등이 더해지면서 잡음이 들끓고 불신의 뿌리는 더 깊어졌다. 우량기업이 다시 코스닥을 이탈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코스닥 시총 1, 2위를 오르내리는 알테오젠은 지난해 8월 코스피 이전을 결정했다. 올들어 코스피 급등으로 시장 환경이 달라지고 협단체들의 잔류 호소에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지만 기업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코스피 이전을 외면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코스닥이 오명을 벗고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코스닥 시장 활성화 정책을 가동한다. 부실기업을 솎아내고, 이르면 10월 '승강제(세그먼트 제도)' 도입도 추진한다. 세그먼트 제도는 코스닥 시장을 프리미엄·스탠더드·관리군 총 3개 리그로 나눠 우량기업을 선별하는 게 핵심이다. 자금이 원활하게 돌고 동시에 부실기업은 빠르게 퇴출시켜 건전한 시장을 만들려는 그림이다. 우량기업군이 자리를 잡으면 패시브 상품 설계가 쉬워지고 자금 유입이 늘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대장주인 알테오젠이 코스닥에 남으면 이런 정책 수혜를 받게 되지 않겠냐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이번 정책들이 코스피 이전상장을 막는 효과를 낼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낙관론만 있진 않다. 벤처업계에선 1·2부 리그식 재편이 상위 프리미엄 기업만 더 좋아지는 불균형의 구조를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강하다. 혁신성을 가진 기업에 자금을 넣는 게 아닌, 단기 실적 같은 전통적인 잣대로 줄을 세우는 게 코스닥의 본래 취지가 맞냐는 의구심도 녹아 있다. 스탠다드 세그먼트에 편입되면 비우량·비선호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반발 요인이다. '초기 테슬라도 코스닥에 상장했다면 스탠다드 편입을 피하기 어렵지 않았겠냐'는 말도 들린다.
코스닥 개혁의 과제는 시장의 회복이다. 설령 알테오젠이 고민을 접고 이삿짐을 싼다고 해도 앞으로 나올 유망 벤처들의 코스피행을 고민하지 않게 할 안전 장치들이 필요하다. 세제 지원과 연기금 참여 확대, 세그먼트 제도 도입에 대한 부정론을 지울 다각적인 방안으로 체질을 높여야 한다. 기업들이 여기 남아도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할 만한 유인책과 강력한 시그널이 필요하다.
코스닥은 코스피와 다른, 독립적이고 차별화된 시장이다. 단순한 중소형주 시장이 아니라 모험자본이 순환하는 혈관이 모인 곳이다. 혈관이 막히면 벤처캐피탈(VC)의 회수시장이 얼어붙어, 창업-투자-성장-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도 꼬여버린다. 선순환이 흔들리면 초기 스타트업에 돈을 넣을 투자자는 사라진다. 정부가 K자형 성장을 극복하겠다며 야심차게 내민 '국가창업시대'의 안착도 없다. 하반기 정부의 코스닥 정책이 시장에 새로운 뿌리를 내릴 분수령이자, 국가창업시대를 위한 준비가 되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