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카 대신 내 카드?"⋯초등학생 체크카드 시대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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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문구거리에서 아이들이 학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초등학생도 자기 이름의 체크카드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부모가 현금을 주거나 이른바 '엄카'(엄마 카드)를 주던 방식에서, 자녀가 정해진 금액 안에서 직접 결제하는 방식으로 선택지가 넓어진 것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5월부터 후불교통 기능이 없는 미성년자 체크카드 발급 연령은 기존 만 12세 이상에서 만 7세 이상으로 낮아졌다. 후불교통 기능이 있는 미성년자 체크카드는 만 12세 이상부터 발급할 수 있고, 후불교통 이용 한도는 월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늘었다.

이는 지난해 11월 '여신전문금융회사 CEO 간담회'에서 발표한 '미성년자의 카드 결제 편의성 제고방안'의 후속조치로,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되며 4일 공포 즉시 시행됐다.

용돈도 현금·엄카에서 본인 카드로

▲부모가 자녀에게 본인 명의 체크카드를 쓰며 용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챗GPT AI 생성)

이번 조치는 결제수단이 하나 늘어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린 자녀의 소비는 그동안 현금 용돈이나 부모 카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금은 사용처를 확인하기 어렵고, 부모 카드를 주면 아이가 스스로 예산을 나눠 쓰는 경험을 하기 어렵다.

부모 명의 카드를 자녀가 대신 쓰는 방식도 조심해야 한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는 원칙적으로 명의자가 사용하는 결제수단이다. 부모 카드를 자녀에게 맡겨 쓰게 하면 법적으로 양도에 해당해 분실이나 도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복잡해질 수 있다.

자녀 명의 체크카드는 이런 위험을 일부 줄일 수 있다. 부모가 넣어준 금액 안에서만 쓸 수 있고 사용 내역도 남는다. 아이는 잔액이 줄어드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고, 부모는 지출 내용을 보며 용돈 사용법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

다만 카드가 곧바로 금융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금은 지갑에서 돈이 사라지는 감각이 뚜렷하지만, 카드는 결제가 빠르고 체감이 약하다. 편의점 간식, 문구류, 온라인 콘텐츠 같은 소액 지출이 반복되면 잔액은 금방 줄어든다. 체크카드를 '마음껏 쓰는 도구'가 아니라 '돈의 흐름을 확인하는 도구'로 써야 하는 이유다.

부모 통제와 금융교육 사이

▲부모와 자녀가 용돈 사용 내역을 함께 보며 소비 한도와 저축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진=챗GPT AI 생성)

아이의 첫 카드는 부모에게도 기준을 요구한다. 얼마를 넣어줄지, 어디까지 쓰게 할지, 사용 내역을 얼마나 확인할지 정해야 한다. 지나치게 통제하면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잃고, 아무 기준 없이 맡기면 소비 습관이 흔들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용 한도와 용도를 먼저 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 달 용돈을 정하고, 간식비·준비물 구입비처럼 사용할 범위를 나눈 뒤 월말에 내역을 함께 보는 식이다. 핵심은 지출을 혼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썼는지 돌아보게 하는 데 있다.

사용 내역 확인도 균형이 필요하다. 모든 결제를 감시하듯 보면 카드는 통제 수단이 된다. 반대로 전혀 보지 않으면 점검의 기회를 놓친다. 부모가 대신 판단하기보다 아이가 자기 소비를 설명하도록 돕는 방식이 중요하다.

첫 카드는 소비 습관의 출발점

▲현금은 남은 돈을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카드는 앱이나 문자 알림으로 잔액과 사용 내역을 확인해야 한다. (사진=챗GPT AI 생성)

초등학생 체크카드가 늘어나면 용돈 관리 방식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현금은 남은 돈을 눈으로 바로 볼 수 있지만, 카드는 앱이나 문자 알림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잔액 확인, 결제 내역 점검, 월별 사용 계획이 더 중요해지는 셈이다.

카드를 만들기 전에는 규칙을 정해두는 것이 좋다. 월 한도, 사용할 수 있는 품목, 온라인 결제 가능 여부, 추가 충전 기준을 미리 정하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분실했을 때 신고 방법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면 안 된다는 점도 함께 알려야 한다.

초등학생 체크카드는 금융교육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자칫 단순한 소비수단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카드 발급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 이후의 대화다. 부모가 "얼마를 썼나"를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 썼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나눠 쓸지"를 함께 이야기한다면 카드가 용돈 관리 연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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