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기업·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려 전삼노가 파업을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이런 논리에선 전삼노의 파업 철회가 ‘선심’이 된다. 반대로, 기업·국가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파업은 해도 된다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다. 본질은 ‘성과급을 명분으로 한 파업이 정당한 것인가’ 이다.
사법부는 일관되게 경영성과급을 임금과 분리해서 본다. 경영성과급은 경영상 판단에 따라 ‘사후’ 결정되는 것으로 근로계약에 따라 ‘사전’에 약정되는 임금(근로조건)과 다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는 파업 등 노동쟁의 대상을 근로조건 결정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으로 제한하는데, 경영성과급 요구가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요구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를 이유로 한 쟁의행위도 불법이 된다.
영업이익의 원천 관점에서도 성과급을 삼전노의 권리로 보기 어렵다. 이익은 크게 기대이익과 초과이익으로 나뉘는데 일반적인 성과급 재원은 기대이익이 아닌 초과이익이다. 이익의 원천을 자원과 자본, 노동으로 본다면 통상 기대이익은 자원과 자본, 그리고 수요·공급 등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돼서다. 삼전노의 주장은 ‘노동’ 외 원천에 기인한 기대이익까지 근로자에게 분배하라는 것으로, 경영이익과 자본이익을 부정하는 비합리적 억지다.
백번 양보해 노동이 기대이익을 높이는 데 기여했더라도 이를 온전히 삼전노의 성과로 보긴 어렵다. 반도체 부문에 투입된 노동에는 본사뿐 아니라 하청·협력업체 근로자의 노동도 포함된다. 이런 점에서 ‘본사’에 제한해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달라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저 ‘내 몫만’ 더 달라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성과급을 더 달라며 파업을 강행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존 롤스(John Rawls)가 제시한 ‘무지의 장막’은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다. 신분과 능력, 성별 등 개인의 배경을 모른 채 사회·정치의 원칙을 합의하도록 하는 철학적 가정이다. 가령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대기업 노조인지 협력업체 직원인지조차 모른다면 결국 누구에게도 과도하게 불리하지 않은 제도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롤스는 이 무지의 장막에서 사회계약이 더 공정해질 수 있다고 봤다. 이를 삼전노에 대입해 보자. 삼전노가 본인들의 소속과 고용형태를 모른다면 기업의 미래를 헐어 일부 정규직 노조의 배를 불리자는 데 찬성했을까. 사실 성과급 사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한편으로 삼성전자의 성과급 사태를 바라보며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조법 제2·3조가 얼마나 효과를 볼지도 의문이 든다. 개정 노조법의 전제는 대화와 상생 노력이다. 여기에는 노사관계에서 대화·상생뿐 아니라 노조 간 대화·상생도 포함된다. 원청 노조가 본인들의 근로조건만 챙긴다면 그 결과로 하청 노조의 교섭권이 약해져서다. 노동부는 노조법 개정 당시 원청 노조의 ‘선의’를 기대했다. 아직은 대기업 원청 노조에서 어떤 선의도 보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