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적임자 없음’ 뒤에 남은 인사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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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장 인선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적임자’다.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는 말은 그럴듯하다. 중요한 자리에 아무나 앉힐 수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말이 더 많은 의문을 남긴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인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선임 절차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말 차기 이사장 공모에 들어갔지만, 압축된 후보군 3명이 모두 반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적임자가 없었다”는 이유다.

인사는 신중해야 한다. 정책금융기관인 기보라면 더 그렇다. 기보는 기술력과 혁신성을 갖춘 중소벤처기업에 보증을 공급하는 기관이다. 올해만 5조4000억원의 신규보증을 포함해 총 30조1000억원 규모의 보증 지원에 나선다. 중동전쟁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1조2000억원 규모의 특례보증도 시행한다.

다만 ‘적임자 없음’이라는 설명은 이번 인선 지연에 대한 답변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기보 임원추천위원회는 공개모집과 심사를 거쳐 후보군을 압축했다. 그 결과 내부 출신 인사 2명과 내·외부 이력을 모두 가진 1명 등 3명이 인사검증 단계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막바지에 후보 전원이 반려된 것이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점도 미묘하다. 일각에서는 선거 이후 낙천·낙선 인사가 자리를 채우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물론 공공기관장 인선이 선거 일정과 맞물려 지연될 때마다 되풀이되는 의심이기도 하다. 정부가 낙하산 인사 논란을 피하고 싶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설명이다.

김종호 현 이사장의 공식 임기는 2024년 11월 초 끝났다. 후임을 찾지 못하면서 유임 기간은 1년 6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재공모에 들어가면 서류·면접 심사와 인사 검증을 다시 거쳐야 한다. 당장 절차가 재개돼도 신임 이사장 취임은 빨라야 6월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사이 기보는 임기 만료 기관장의 유임 체제로 주요 보증 정책 집행을 이어가야 한다.

기관장 인선이 길어질수록 조직은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신규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중장기 전략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새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이다. 중소기업계에서 기보가 맡은 역할을 고려하면 이번 인사 지연은 가볍게만 볼 수는 없다.

인사의 신중함이 선거 이후 자리를 비워두기 위한 명분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면 왜 적임자가 아니었는지, 재공모를 통해 어떤 기준으로 다시 찾겠다는 것인지 설명할 필요성이 있다. 기보의 시간은 인사권자의 시간만이 아니다. 보증을 기다리는 중소벤처기업의 시간과도 맞닿아 있다. 낙하산 의심을 키우는 침묵은 그 시간을 더 무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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